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임진강변에서 이경구(오른쪽) 파주시 어촌계장이 참게잡이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
임진강은 분단의 강이다. 북한 강원도 두류산에서 발원한 강은 한반도 중심을 관통해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리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을 가른 뒤 한강으로 녹아든다. 임진강은 남북을 잇는 강이자 남북을 가르는 강으로 이 강에는 아픔과 한이 서려 있는데,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삶의 슬픔을 달래주던 북한 노래 ‘임진강’에는 그런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임진강 유역은 예부터 비옥한 평야지대로 농업이 발달했고, 강을 젖줄 삼아 어업과 물류가 번성했다. 남북협력시대를 맞아 변화의 바람이 술렁이는 가운데 개발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가을철에 많이 잡히는 임진강의 특산물인 참게.
■ 임진강 어부들 “예전엔 물 반, 고기 반이었는데”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강변에서 바라본 임진강 위로는 물고기들이 펄떡이며 뛰어올랐다. 참게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이경구 파주시 어촌계장은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이활동이 왕성한 지금이 참게를 잡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며 “크고 값싼 중국산 때문에 참게의 이미지가 흐려졌는데 임진강 참게는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맛과 영양이 뛰어난 특산물”이라고 말했다. 폭 500m 강 너머 민간인통제지역(민통선) 마을 뒷산으로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씨는 이날 2인1조로 조업에 나선 지 5시간 만에 참게 35㎏을 잡았다고 했다.
총 길이 254㎞인 임진강 구간 중 3분의 2는 북한 지역이다. 나머지 3분의 1이 연천·파주 구간이다. 연천에서는 어부 27명(30척)이 고랑포~군남댐 앞까지 50~60㎞ 구간에서 참게와 대농갱이, 쏘가리, 메기 따위를 주로 잡는다. 예전에는 다슬기가 주 소득원이었는데, 군남댐이 생긴 뒤 자취를 감춰 최근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유재학(66) 연천어촌계장은 “북과 경계를 이룬 연천 구간은 북의 강수량과 황강댐 방류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북에서 댐을 막고 강물을 흘려보내지 않아 수량이 갈수록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파주 임진강 어부들의 주 수입원은 실뱀장어와 황복이다. 실뱀장어는 마리당 5천원의 ‘귀하신 몸’이고, 황복은 1㎏당 10만원으로 ‘황금돼지’ 대접을 받는다. 모두 봄철인 4~6월 초에 올라온다. 가을에는 참게와 숭어가 많이 잡힌다.
하구가 막히지 않은 임진강 하류는 어종이 풍부하다. 두포리 이장 임용석(62)씨는 “전에는 초평도 근처에서 작대기로 때려서 잡을 만큼 물고기가 많았다. 황복이 산란을 위해 떼 지어 올라오는데, 너무 많아 처치가 곤란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금쪽같은 황복이 당시에는 독 때문에 먹지 못해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김병수(61·3선단장)씨는 “예전엔 물 반, 고기 반이어서 술 먹다 돈이 모자라면 잠깐 나가서 메기와 잉어 몇마리를 잡으면 해결됐다. 지금은 고기 잡아 돈 버는 시절은 지났고 어부들이 농사나 장사를 겸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진강 어부들은 ‘민통선에서 고기 잡는 죄’로 숱한 고초를 겪었다. 간첩의 수중 침투에 대비해 물이 많은 사리 때면 순번을 정해 밤에 ‘강상 순찰’을 돌아야 했고, 사람을 잡는 갈고리 모양의 낚시를 강에 던져야 했다.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주검을 건지는 일도 어부들 몫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14살부터 이 강에서 고기를 낚아온 이순찬(62·2선단장)씨는 “1970~80년대는 군인들의 통제가 심했다. 고기를 못 잡게 할까봐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노를 젓는 목선이었는데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노를 군 초소 앞에다 열쇠를 채워 보관했다”고 전했다.
어민들은 임진강에 전진교(1984년 개통)나 통일대교(1998년 개통)를 건설할 때도, 통일대교 주변에서 조업을 금지할 때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군남댐(2011년 준공)과 한탄강댐(2016년 준공)을 만들 때도 정부는 어업 보상은커녕 주민설명회나 환경영향평가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박 시설이 없어 장마 때 배와 어구들이 떠내려가도 하소연조차 못 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를 추진하면서 어부들에게 주민설명회 개최 소식조차 알리지 않았다. 어부들이 더는 참지 못한 이유다. 이들은 지난 10일 파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진강을 오염시키고 어민들을 쫓아내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를 결사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한 유일의 비무장지대 마을인 경기도 파주시 대성동마을에서 80년 넘게 살아온 원주민 김동례 할머니.
■ 대성동마을 주민들 “맨손으로 논 만들어”
임진강 근처에 있는 대성동마을은 남한 유일의 비무장지대 마을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곳은 농토가 넓어 가구당 10만㎡(약 3만평) 규모의 벼농사를 짓는다. 47가구(190명)의 평균 소득은 연 7천만원 안팎으로 다른 민통선 마을들에 견줘 풍족한 편이다.
하지만 시작은 고단했다. 1953년 휴전 뒤 이 마을 주민 160여명은 맨손으로 폐허가 된 땅을 개척했다. 대성동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김동례(82) 할머니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는 말에 “젊어서 논을 만들 때”라고 했다. “열여덟에 결혼해 서른살까지 고생을 죽도록 했어요. 기계도 없던 시절이라 마을에 남은 소 3마리와 낫과 삽을 들고 맨손으로 땅을 일궜지요.”
주민들은 휴전 뒤 1주일에 한번 운행하는 미군 트럭을 타고 바깥출입을 했다. 금촌에 나가서 벼를 내다 팔고 소를 사서 트럭에 싣고 들어왔다. 10년쯤 지나서 마을 승합차가 미군 트럭을 대신했고, 지금은 하루에 4차례 버스가 운행된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문산이나 금촌, 서울에 집이 있는 주민들도 많다.
전쟁 때도 피난 가지 않았던 김씨는 당시 마을 상황을 생생하게 되짚어냈다. “마을에 80채 정도 집이 있었는데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가며 들어왔어요. 1·4 후퇴 이후 쌕쌕이(미군 전투기)의 폭격이 심했어요. 휘발유통을 뿌려 불을 질러 마을이 모두 불타고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요. 방공호에 들어가 몇달간 살았는데 눈이 많이 와서 고생했어요. 젊은 사람들은 임진강 건너 피난 가고 노인과 아이들은 마을에 남았는데, 아버지를 포함해 주민 6~7명이 북으로 잡혀갔지요.” 김씨는 “쌀이 떨어져 식구들이 굶게 되자 아버지가 벼를 베러 논에 나갔다가 인민군에게 붙들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다. 김씨가 13살 때였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북 기정동마을과 함께 비무장지대에 남은 대성동은 유엔군사령부의 통제를 받는 특수마을이 됐다. 주민들은 국방·납세 의무를 면제받는 한편, 토지를 소유할 수 없고 경작권만 인정받는다. 집을 나서거나 들어올 때 군부대에 신고해야 하며, 매일 저녁 일일점검을 받고, 일하러 논에 갈 때도 무장군인과 동행해야 한다. 이 마을 김동구(51) 이장은 “겉은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주민들의 형편은 썩 좋지 못하다. 집과 농토가 있지만 담보 대출도 받을 수 없고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도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바뀌더라도 70년간 지켜온 마을공동체가 깨지지 않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통선 지역인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임진강변 들녘에서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 장단반도 농민들 “친환경 농사가 대안”
자연하천의 원형을 간직한 임진강 하구에는 성동습지, 대동리습지 등 크고 작은 습지들이 발달해 있다. 이 가운데 민통선 북쪽 장단반도는 총 330만㎡(100만평)의 갈대밭과 논으로 이뤄진 습지다. 전쟁 뒤 장단반도는 미군과 한국군 포격훈련장의 피탄지로 수십년간 사용됐으나, 지금은 친환경 농경지로 거듭난 상황이다.
농민들은 장단반도 농경지의 절반인 82만㎡(25만평)에서 친환경농사를 지어 파주와 광명, 부천 지역에 친환경 급식 쌀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장단반도가 친환경 농업지구로 지정되길 원하고 있지만, 남북관계가 개선될수록 이곳의 개발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기 파주시 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장단반도는 공간이 분리돼 있고 들판이 넓어 농사짓기가 수월하고 환경 보전도 잘돼 소비자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임진강 유역에서 살아온 사람과 자연생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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