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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수도권

반환 미군기지 건물 건재한데 기지촌은 ‘쇠락의 길’

등록 2019-09-28 05:00

‘캠프 하우즈’ 봉일천 주민 뿔뿔이 흩어져 스산
파주 미군기지 6곳 투자유치 12년째 감감 무소식
홀로 월남한 이재춘씨 “70년 한심한 세월 살아”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4리 주민들이 반환된 미군 공여지인 캠프 하우즈를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춘, 양재영, 이응천씨.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4리 주민들이 반환된 미군 공여지인 캠프 하우즈를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춘, 양재영, 이응천씨.
미군기지 캠프 하우즈가 떠난 지 15년이 지난 기지촌은 마치 고장난 시계처럼 과거에 멈춰 있었다.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4리 주민들과 둘러본 마을 뒷산의 미군기지 빈 건물들은 여전히 건재한 반면, 도시개발사업이 지연된 마을은 쇠락의 길로 치닫고 있었다. 공릉천변에 자리한 50가구의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던 봉일천4리는 1950년 한국전쟁과 함께 외국 군대가 갑자기 들어닥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외지인과 접대여성 등 수백명이 미군기지 앞에 천막을 치거나 방 한칸을 얻어 미군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마을에서 최연장자인 이재춘(95) 할아버지는 “미군부대가 떠나니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만 눌러앉아 제2의 고향이 되고 말았다. 곧 고향에 돌아갈 줄 알고 한심한 세월을 살았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9남매 중 맏이인 이씨는 1946년 7월21일, 고향인 황해도 벽성군에 부인과 아들, 부모님, 8명의 동생을 남겨두고 홀로 삼팔선을 넘었다. 농사를 짓던 조선민주당원인 아버지는 토지 분배를 둘러싸고 공산당원인 친척과 갈등이 생기자 장남인 이씨를 남쪽으로 내려가게 했다. 9·28 서울수복 뒤 고향 마을에서 잠시 가족을 상봉했으나 송악산 전투가 터지는 바람에 하루 만에 다시 이별해 70년간 타향에서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다.

옹진과 연평도에서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먹고살기 위해 미군 보조 역할을 하는 ‘유엔경찰’이 됐다. 1주간 훈련을 받은 뒤 의정부경찰서로 배치돼 동두천 탄약고를 지키거나 군인, 경찰, 접대여성을 보호하는 일을 맡았다. 파주 장단에서 피난민들을 금촌수용소로 실어오는 일도 그의 업무였다.

5년쯤 지나 유엔경찰이 해산되자 1956년, 32살의 나이에 파주 미군기지에서 미군 옷 세탁과 청소 등을 하는 ‘하우스 보이’가 됐다. 보수로 한달에 담배 7보루씩을 받았다. 당시 캠프 하우즈엔 미군 병사 560명과 하사관 160명이 주둔했다.

“지금은 깜깜하지만 당시에는 마을이 번성했지요. 미군부대 앞 야산 천막에서 종업원 160명이 자취를 하고 양색시(접대여성)도 70명이 넘었어요. 내가 살던 옆집에서 미군이 양색시를 죽인 적도 있어요. 그 당시엔 경찰도 힘을 못 쓰고 무법천지였죠.”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4리 주민들이 반환된 미군 공여지인 캠프 하우즈를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춘, 양재영, 이응천씨.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4리 주민들이 반환된 미군 공여지인 캠프 하우즈를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춘, 양재영, 이응천씨.
캠프 하우즈의 역사도 이씨의 생애처럼 다사다난했다. 전쟁 중인 1953년 미 해병대 사령부 기지와 본부로 시작된 뒤 1955년 미 24보병사단 기지, 1959년 미 1기병사단 보충대와 24사단 본부로 사용되다 1960년 미 1사단 본부가 초대 사령관의 이름을 따 캠프 하우즈라 불렀다. 1965~71년 주둔하던 미 2보병사단 사령부가 동두천으로 옮겨간 뒤 2사단 3여단과 44공병대대 본부가 이용하다 2004년 한국군에 이양됐다.

파주 지역 미군기지 6곳은 2007년 반환이 완료됐으나 캠프 그리브스만 경기도에서 디엠제트 체험관으로 활용할 뿐 나머지 5곳은 12년째 방치돼 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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