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강에서 바라본 임진적벽에 단풍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50만년 된 경기 파주시 임진강 하류의 ‘임진적벽’이 아무런 보호대책 없이 공사 과정에서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 문화재청 등 정부당국의 보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 너머로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임진강변에는 병풍처럼 늘어선 임진적벽이 일부 훼손돼 적벽을 이루던 현무암 조각들이 10~20m 아래로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임진강 위에서 바라본 주변 임진적벽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율곡 이이는 적벽을 물들이는 돌단풍을 보고 임진강변에 세운 정자를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임진적벽은 개성의 경치 좋은 8곳을 꼽는 ‘송도8경’에 ‘장단석벽’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겸재 정선의 ‘임진적벽’이라는 진경산수화로도 유명하다.
임진적벽의 훼손은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가 지은지 40년이 넘은 양수장의 노후된 수리시설 보강을 위해 강 쪽으로 중장비 진입로를 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가 장파양수장 개보수공사 과정에서 임진적벽을 훼손한 현장. 떨어져나간 현무암 일부가 강변에 나뒹굴고 있다.
농어촌공사 파주지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임진강 취수량 확보를 위해 공사비 36억9500만원을 들여 장파양수장 수리시설 개보수 공사를 지난 15일 시작해 봄철 영농기인 내년 4월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 양수장은 1973년 준공이후 46년간 장파리, 늘로리 등 임진강 유역 들녘 328㏊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오고 있다. 이 지역 농민들은 북의 황강댐 건설과 이에 대응한 남의 군남댐 건설로 임진강의 수량이 해마다 줄어 취수에 어려움을 겪자 그동안 양수장 확장을 요구해왔다.
농어촌공사 쪽은 이날 양수장 확장 공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공사 구간에 적벽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밝혀 정부의 허술한 문화재 대책에 대한 현주소를 드러냈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 관계자는 “양수장 주변이 모두 급경사 구간이라 최대한 가깝고 완만한 곳을 찾아 중장비 진입로를 내려했는데 그곳에 적벽이 있는줄 몰랐다”고 말했다.
자장리 어부 이영희씨는 “공사구간을 조금만 옮기면 적벽이 없는 곳이 있는데 농어촌공사가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적벽을 훼손했다. 적벽 바로 아래는 어장도 있어 어업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가 장파양수장 개보수공사 진입로를 내기 위해 임진적벽을 훼손한 뒤 논란이 일자 공사를 중단한 뒤 응급복구를 해놓았다.
문화재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비무장지대(DMZ) 일원이 더 훼손되기 전에 임진강 하구 유역에 대한 문화재 조사와 습지보호지역 지정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개발 공사를 하려면 주변 문화재 지표 조사나 기본 자료들을 검토해야 하는데 공사 구간에 적벽을 있는 줄도 몰랐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디엠제트 주변의 막개발과 훼손을 막기 위해 문화재청은 문화재 분포 지도를 만들고 보호구역을 확대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인근 임진강 연천 구간과 한탄강 적벽은 국가지질공원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에 등재돼 보호를 받는데, 파주 구간은 아무런 보호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1일 성명을 내어, “파주시와 환경부, 문화재청 등은 임진강 파주 구간의 적벽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조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가 운영하는 임진강 장파양수장의 흡입조 시설(사진 아랫쪽). 농어촌공사는 취수량을 늘리기 위해 흡입조 시설을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한편, 임진적벽은 12만~50만년 전 쯤 북한의 강원 평강군 부근의 오리산에서 여러 차례 화산폭발이 일어나 용암이 분출돼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진강 파주구간의 적벽은 민간인 통제구역인데다 배를 타고 봐야하기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 국내외적으로 아무런 보호조처가 마련되지 못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