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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 파수꾼 ‘지지동반자’를 아시나요?

등록 2019-11-06 05:00수정 2019-11-06 10:14

영상 유포에 피해자 극단적 생각
서울시·여성인권상담소 도움 받아
출국 앞둔 가해자 경찰 앞에 세워
지난달부터 방문상담 등 본격 활동
불법촬영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조재석
불법촬영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조재석

20대 대학생 윤나영(가명)씨는 올해 초 남자친구 최형석(가명)씨에게 성관계를 촬영하자는 요구를 받았다. 윤씨는 수차례 거절했지만, 최씨의 집요한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계속 거절하면 남자친구가 나를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컸다. 남자친구는 “나만 보고 지우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윤씨는 최씨의 친구에게 휴대전화로 동영상 4개를 받았다. 올해 초 남자친구의 집요한 요구로 찍은 바로 그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윤씨의 주변 사람에게도 보내졌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영상을 봤을 것 같은 공포심에 윤씨는 며칠을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절망감과 수치심에 극단적인 시도도 했다.

용기를 내 경찰서를 찾았지만, 수사관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얼굴을 들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사관은 윤씨의 손목에서 극단적인 시도를 한 상처를 보고 ‘지지동반자’를 연결해줬다. 지지동반자는 서울시와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운영 중인 디지털성범죄 피해구제 1 대 1 지원 서비스다.

윤씨는 이를 통해 김영서 서울시 지지동반자를 만났다. 김씨는 윤씨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동행했다. 수사 과정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사적인 질문이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질문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개입해 윤씨를 보호했다. 반대로 수사에 꼭 필요하지만 윤씨가 답변을 망설이는 질문에 대해선 윤씨를 설득하기도 했다. 불법으로 유포된 영상에서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윤씨 대신 찾아 채증하고, 공포감에 시달리는 윤씨의 심리 상담을 해 주는 것도 김씨의 몫이었다.

최씨는 경찰 수사망을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이를 결정적으로 막은 이가 김씨다. 김씨는 최씨의 지인 등을 통해 그가 출국할 것이라는 소식을 출국 이틀 전에 확인해 이를 경찰에 알렸다. 이에 경찰은 신속하게 검찰에 출국금지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당일 바로 영장을 발부했다. 최씨는 결국 출국하지 못하고 현재 경찰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시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 서울시 제공
서울시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 서울시 제공

지난 4일 <한겨레>와 만난 김씨는 “불법촬영물이 추가로 유포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한 것은 피해자에게 ‘적당한 거리의 친구’가 돼 이야기를 들어주고, 복잡한 수사과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 충격으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죽고싶다’고 했던 윤씨가 이제는 ‘언니가 도와주니까 고맙다’고 하더라. 경찰 수사관도 ‘지지동반자가 있어 빠르게 조사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지난 달부터 불법촬영물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엔 지지동반자가 직접 찾아가는 상담해주는 피해자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포된 뒤 확산이 빠른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즉각적인 대응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지지동반자가 즉각 피해자의 고소장 작성과 피해자 진술 등 경찰수사 과정과 법률소송을 동행·지원하고,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심리치료를 연계하고 있다.

약 한 달 동안 지지동반자 3명이 4명의 사건 피해자의 수사 과정과 심리치유를 지원했으며, 최근에는 경찰과 시민들에게 알려지며 도움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해 발간한 ‘온라인 성폭력 피해실태 및 피해자 보호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불법촬영물이 유포된 피해자 45.6%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고, 이 가운데 42.3%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으며, 19.2%는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는 ‘생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이기 때문에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자는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많은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직접 불법촬영물을 보며 채증을 해야하는 경우, 계속 보면 구토가 나올 정도로 괴롭다. 또한 어디로든 유포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너무 커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많다”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어 도움을 받고 싶다면,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 전화 ☎02-2275-2201, 온라인 상담 digital_sc@hanmail.net 등에서 비밀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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