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유럽발 비행기 탑승객들이 격리시설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로 향하고 있다. 인천공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자가격리자도 투표할 수 있다고 해서 귀국했는데…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투표하게 해주세요.”
영국에서 유학 중인 이아무개(19·여)씨는 '자가격리자도 투표할 수 있다'는 정부의 발표에 이달 11일 급히 귀국했다. 만 19살인 그는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하려고 80만원의 항공료와 20시간의 비행도 마다치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재외국민 투표는 취소됐고, 입국해도 2주간 자가격리하는 탓에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마음에 단숨에 달려왔지만, 그의 꿈은 허망하게 날아가게 생겼다. 자가격리자 투표 관련 정부 지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정부 지침을 보면, 격리 장소에서 투표소까지 자가용이나 도보로 편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어야만 투표가 가능하다. 자가격리자에게 허용된 외출시간이 선거 당일인 15일 오후 5시20분부터 7시까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거주지 외 투표가 가능한 사전투표에선 자가격리자 투표를 제한했다.
이씨가 입국 뒤 곧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경기 김포시에서 이 지침을 들어 이양의 외출을 불허했다. 김포시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이씨의 격리 장소에서 고양 일산서구 투표소까지 이동시간을 예측한 결과, 38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직접 포탈 등의 내비게이션 앱으로 이동시간을 검색해 봤더니 시간대와 교통량에 따라 29~32분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이를 근거로 김포시에 재차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성토했다. 이어 “김포시뿐만 아니라 주소지 관할인 고양시, 행정안전부에도 전화해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30분을 넘기면 지침 위반이라는 말만 되돌아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인생 첫 투표권을 포함한 수많은 재외국민, 해외입국자, 자가격리자,코로나 확진자의 투표권을 보장하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 글도 올렸다. 이 글에서 이씨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가용 안에서 무정차로 도로 8분 더 달리는 것이 과연 방역에 영향을 끼치느냐”고 반문하며 “헌법이 명시한 국민의 참정권을 박탈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김포시는 정부가 정한 지침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해석해 적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정부 지침으로 정한 30분을 넘기면 지침 위반”이라며 “우리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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