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몸뚱이를 불사 질러서 국민 몇 사람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저는 몸을 던지겠습니다. 내 작은 몸뚱이를 불사 질러서 광주 시민, 학생들의 의로운 넋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이 민족을 위하여 몸을 던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과분한, 너무 거룩한 말이기에 가까이할 수도 없지만, 도저히 이 의분을 진정할 힘이 없어 몸을 던집니다.”
광주민중항쟁이 전두환 정권의 군홧발에 처참하게 짓뭉개진 지 10여일 뒤인 1980년 6월 9일 오후 5시50분. 22살 청년 김종태가 서울 신촌역 부근 사거리에 섰다. 그리고 불길이 올랐다. 노동자 김종태는 그렇게 열사가 됐다.
부산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김종태 열사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하지만 배움의 집념은 누구보다 강했다. 야간학교에 다니며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78년에는 야학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야학이 강제 해산된 뒤 방위병으로 소집된 그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을 전해 듣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는 분신 이틀 전 이해학 주민교회 목사에게 글을 전했다. 그는 이 글에서 “도대체 한 나라 안에서 자기 나라 군인들한테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며 죽어가는데 나만, 우리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들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라고 썼다. 그리고 그는 몸에 불을 붙여 광주를 기억했다.
김종태 열사의 분신 40주기를 맞아 책 <너는 불꽃이었다. 햇살이었다>가 나왔다. 이 책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만행을 규탄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긴 한 젊은 영혼을 추모하는 벗들의 글과 고뇌에 찬 김종태 열사의 글과 유서가 담겼다.
김종태열사추모회(회장 김광석)는 오는 6일 경기도 성남시 주민교회에서 출판기념회와 함께 조촐한 추모식을 한다. 김 열사의 친구이자 야학 스승이었던 최광열(66)씨는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군부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의 호소가 담긴 책이다. 암울한 시대 상황을 되짚어보며 열사를 기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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