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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극장에서 틀어주던 ‘문화영화’를 아시나요?

등록 2020-11-10 13:34수정 2020-11-10 14:16

국가기록원, 정권홍보·국민계몽 227편 공개
문화영화 ‘사람, 사람, 사람’(1983) 갈무리.
문화영화 ‘사람, 사람, 사람’(1983) 갈무리.

“저 초침 소리가 51번씩 울릴 때마다 저 아기들이 한명씩 태어나죠. 하루 1700여명의, 한달이면 5만 명을 웃돌고, 1년이면 60만 명을 훨씬 넘어서, 대전시만 한 인구가 불어나게 되죠. 우리나라 인구는 이미 4천만을 넘어섰습니다. 국토의 면적은 산과 강을 빼고 나면 3만평방킬로미터(km²)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인구밀도는 세계 3위지만, 복잡하기로는 세계 1위지요. 지어도 지어도 모자라는 집. 멈출 줄 모르고 늘어나기만 하는 인구 문제는 거의 모든 영역에 충격을 줍니다.”

1983년 정부가 제작한 사람, 사람, 사람이라는 ‘문화영화’의 한 대목이다. 이 영화는 다자녀를 둔 가정이 복잡한 도시에서 겪는 어려움을 그린다. 교통체증과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아빠로 등장하는 남자배우는 “그러게 좀 작작 낳지”라고 꾸짖는다. 영화는 당시 사회문제를 ‘다출생’ 탓으로 비장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삶의 질이나 도의,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마멸된 저 현장도 넘치는 사람으로 하여 빚어지는 어두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37년이 지나 지금은 연간 출생자가 30만명에 그치는 ‘저출생’ 사회가 됐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마멸된 현장”은 아직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1980~1990년대 생산된 문화영화 227편을 10일 누리집을 통해 공개했다. 문화영화는 정책홍보·국민계몽·문화진흥 등을 목적으로 정부가 제작한 영화로 1998년까지 영화관에서 일반 상업영화 상영 직전에 상영돼 관객들은 의무적으로 봐야 했다. 국가기록원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1950~1970년대 제작된 문화영화를 기록물화한 뒤, 누리집에 순차 공개해왔는데 이번이 마지막 공개다.

문화영화 ‘국운 개척의 영도자’(1980) 갈무리.
문화영화 ‘국운 개척의 영도자’(1980) 갈무리.

정부가 제작에 관여한 문화영화는 독재정권의 선전 목적으로도 사용됐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문화영화는 경제와 안보라는 두개의 전황을 시시각각 소개하는 한편,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병참학을 교육하는 매체”라는 평가(임태훈, ‘박정희 정권의 문화영화와 기억 상실의 형식’, 2017)도 있다.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1980년대 문화영화 첫 작품은 국운 개척의 영도자(1980)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당선·취임에 관한 내용이다. “여명의 산굽이 마다에 새 기운, 새 숨결이 일어온다”는 비장한 멘트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학원 내의 문제로 농성을 벌이던 학생들 또한 불순 세력의 충동으로 현실 정치 문제까지 직접 관여하면서 학업을 외면하고 거리를 뛰쳐나와 난동을 부렸다. 이와 같은 학생소요는 급기야 엄청난 광주사태를 야기시키고 말았다”고 지적한 뒤 “전두환 대통령의 탁월한 영도력이 이 엄청난 사태를 수습했던 것”이라고 웅변한다.

문화영화 ‘우리는 정보가족’(1991) 갈무리
문화영화 ‘우리는 정보가족’(1991) 갈무리

정권 홍보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알리는 계몽의 도구이기도 했다. 무역회사 부장 ‘정보통’(37)이 주인공인 ‘우리는 정보가족’(1991)은 29년 전 ‘온택트’ 문화를 소개한다. 정보통씨가 아침식사 전 시아르티(CRT·브라운관) 모니터와 연결된 피시(PC)로 회의자료를 출력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정보통씨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영 어색하다. 깜빡한 아내의 생일 선물로 피시를 통해 꽃배달을 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활용하고 새로운 정보사회를 맞이하려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때 이미 당신은 정보사회의 주인공으로서 새로운 정보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문화영화 ‘서울관광 안내’(1994) 속 서울 이태원의 모습.
문화영화 ‘서울관광 안내’(1994) 속 서울 이태원의 모습.

1994년 서울 정도(수도로 정함) 600년을 맞이해 외국인관광객을 위해 제작된 서울관광 안내 문화영화는 택시·공항버스·지하철 등 교통수단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요관광지로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과 롯데월드·한국민속촌·63빌딩·자연농원(현 에버랜드)와 함께 ‘쇼핑 명소’로 이태원과 남대문시장을 소개한다. 김치와 ‘강남스타일’, 케이팝이 주된 소재였던 최근의 관광홍보영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날치·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출연해 유튜브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한국관광공사의 외국인 대상 관광홍보 콘텐츠와도 비교해보자.

이밖에도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는 지난해까지 공개한 1950~1970년대 문화영화들도 시청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영화 가운데 12편은 해설을 제공하며, 영화제작계획서 등 관련 기록물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이소연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장은 “국가기록원은 종이기록물 뿐만 아니라, 문화영화 등 가치 있는 영상 기록물도 보존하고 잘 활용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문화영화 콘텐츠를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과 생활상을 당시의 시각에서 재미있게 접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글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사진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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