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방선거 당시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선거공약을 검토·제작하도록 한 서울시의원과 구청장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지시에 응한 공무원들도 최고 25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2일 지방선거 공약 작성·검토에 강북구청·강북구의회 공무원을 동원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김동식 서울시의원과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은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형을 원심대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직을 유지했지만,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을 받은 김 시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들의 지시에 따른 공무원들도 70만~250만원 벌금형이 확정됐다.
1~3심 판결문을 보면, 김 시의원과 박 구청장은 자신의 선거공약 개발에 공무원들을 동원했다. 김 의원은 서울시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한 2018년 5월10일 선거공보물에 담을 공약을 만들기 위해 황아무개(5급) 당시 강북구청 기획예산과장에게 10개의 공약을 적은 메모지를 건네고, 관련한 현황과 예산·추진계획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황 과장은 직원들에게 사업당 1장씩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게 했다. 직원들은 구청 내부 문서를 바탕으로 문건을 만들었고, 닷새 뒤 이를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
같은 날 김 시의원은 선거공보물을 만들기 위해 공약 10개 가운데 8개를 강북구의회 공무원 이아무개씨에게 전송했다. 그 이틀 전에도 이씨에게 선거공보물에 들어갈 자신의 약력과 구의원 재직 시절 이행한 공약 목록 등을 전송하고 “공사시기·총사업비 등 간단하게 파악 좀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 요청에 따라 공보물 초안을 작성해 선거공보물 제작업체에 직접 보내줬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김동식 서울시의원 후보 공보물.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 구청장의 선거공보물 제작 과정에도 공무원이 관여됐다. 그는 별정직 공무원인 김아무개 수행비서에게 선거공보물에 “젊은 강북” 관련 내용을 포함하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황 과장을 통해 기획예산과 직원에게 관련 내용을 요청했다. 이 직원은 강북구청 내부 문서를 바탕으로 공약 검토 문서를 작성해 김씨에게 보내줬고, 김씨는 이를 선거공보물 제작업체에 보내줬다.
법원은 이들이 “선거법령을 준수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기획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박 구청장의 공약사업 정리를 마무리하는 격무에 시달리면서 상급자(황 과장)의 지시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거나 일상적인 업무에 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업무가 과중한 동료를 위해 황 과장이 지시하는 일을 대신 수행하다 가담했다”며 하급 공무원인 피고인들의 처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법원 판결로 공무원을 선거에 동원한 박 구청장은 직을 유지했지만, 황 과장은 해임돼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나머지 직원들은 감봉 등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박 구청장은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처벌을 받은) 직원들이 안타깝다는 말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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