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발표된 서울시 ‘노동정책 기본계획’의 일부.
‘노동존중특별시’를 표방해온 서울시가 노동정책의 밑바탕이 되는 ‘노동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미루고 있다. 발표가 미뤄지는 과정에서 초안에는 담겼던 ‘서울형 고용보험’ 등 취약노동자 지원 정책 상당수가 빠진 것으로 알려진데다, 내년 예산안 주요 내용에 노동정책 관련 사업이 반영되지 않아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뒤 시정이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노동자 권리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에 따라 5년마다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 등 취약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노동자의 권리 보호 및 증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노동정책 담당 ‘국’을 만들 정도로 노동정책에 열중해온 서울시는 2015년 4월 노동단체·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기본계획을 작성했다. 이 기본계획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생활임금제, 감정노동자 보호, 노동권익센터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겼고, 이는 다른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노동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15년 1차 기본계획이 2019년까지 내용을 담았으므로 서울시는 올해 2차 기본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2021년을 한달여 앞둔 지금까지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시는 지난해 말부터 2차 기본계획 수립 작업에 들어가 5월1일 노동절에 맞춰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탓에 상황이 변하면서 대대적으로 수정한 기본계획 초안을 다시 마련했다고 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90여쪽 분량의 ‘논의용 초안’을 보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부닥친 취약노동자를 지원하는 ‘서울형 고용보험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울형 고용보험은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영세사업장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에 서울시가 보험료를 추가 지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서울시는 서울형 고용보험을 장기적으로는 ‘서울형 시민보험’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도 초안에 적었다. 이외에 △감염병 취약업종 노동환경 개선 △배달노동자(라이더) 상해보험 가입지원 추진 등도 담겼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내부 논의 과정에서 상당 부분 빠지거나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기본계획 수립 과정을 잘 아는 한 외부인사는 “코로나19 상황에 맞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돼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지만, 박 시장이 숨진 뒤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기본계획 수립이 늦어지면서 노동정책 관련 예산도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내년 예산안 주요 사업 내용을 담은 ‘S-방역, 민생·경제 활력, 미래 투자’라는 열쇳말로 작성된 ‘2021년 서울 살림살이’에서는 노동정책 관련 사업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서울시 쪽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기본계획 검토와 실행계획을 구체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 박 시장 유고와는 관련이 없다”며 “올해 안에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산 반영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세입이 줄어들면서 신규 사업에 배정된 예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