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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추위’ 버텨내는 노숙인들에게 온기 전하는 ‘아웃리치’

등록 2021-01-12 11:37수정 2021-01-12 13:15

[현장] 서울역 다시서기센터 ‘아웃리치’ 활동 동행기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이 10일 밤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공원에서 거리 노숙인들에게 핫팩, 빵, 마스크 등을 나눠주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이 10일 밤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공원에서 거리 노숙인들에게 핫팩, 빵, 마스크 등을 나눠주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중대본] 한파 위험상황입니다. 야외활동 자제, 수도관 등 보온조치, 온열기 화재 예방에 주의 바랍니다.’

며칠 새 이어진 한파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안내하는 안전안내문자의 수신빈도도 잦아졌다. 이러한 ‘주의사항’은 남의 일인 이들이 있다. 수도관이나 온열기보다 오직 자신의 몸 ‘보온’에 집중해야 하는 노숙인들이다. 그나마 추위가 한풀 꺾인 10일 저녁, 서울역 노숙인 다시서기센터 직원들의 거리노숙인 ‘아웃리치’(현장지원 활동)에 동행했다.

북극 추위에도 야외노숙 “4년째 있던 자린데 어딜 가냐”

저녁 7시가 되자, 서울역 광장 앞 서울시립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센터는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를 위해 체온 측정과 마스크 착용, 손소독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상담원들에게 이태용 실장이 유념해야 할 사항을 안내했다. “10일 오전 11시부로 한파주의보로 낮아졌지만 아직 춥습니다. 핫팩, 마스크, 빵 준비돼 있고요. 코로나19 검사도 독려해주세요. 오늘도 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날 활동은 서울역 광장 근처와 서소문공원~순화공원~남대문지하보도~회현역까지 순회하는 두 조로 나누어 진행됐다. 기자는 1주일에 5번씩 아웃리치 활동에 참여하는 휴학생 정상록(23)씨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김준혁(27)씨와 동행했다. 이들은 손수레에 빵을 담고 담요와 감기약, 음료수도 챙겼다. 이어 핫팩 일부의 포장지를 뜯고 흔든 뒤 가방에 담았다. 노숙인들이 받자마자 바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저녁 7시30분,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센터 밖을 나서 서울역 철길과 나란히 난 인도를 따라 서소문공원으로 향했다. 김씨가 눈이 채 녹지 않은 깜깜한 잔디밭 쪽으로 휴대전화 손전등을 켠 채 들어섰다. 구석진 곳에 노숙인 한명이 두꺼운 이불을 겹겹이 덮고 누워있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먹을 것이랑 핫팩 좀 가져왔어요.” 정씨의 말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노숙인은 핫팩을 받고 돌아누웠다. 전날 밤 센터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보온을 위해 온수를 담아준 페트병은 꽝꽝 얼어 있었다. 두 사람은 “며칠 전 눈이 많이 쏟아진 날엔 이불 속이 아예 얼어 있었고, 어제도 엄청 몸을 떨고 계셨다.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권해도 (움직이지 않고) 혼자 계신다”고 했다.

발걸음을 옮겨 찾은 순화공원에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건물 옆과 사람들이 앉도록 만들어진 계단형 스탠드에 예닐곱개 ‘잠자리’가 놓여있었다. 절반 정도엔 사람이 없었다. ‘추운 날씨에 다른 곳에서 자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한 노숙인은 “이 자리에 4년째 있었는데 가긴 어딜 가냐”고 답했다. 그는 빵과 핫팩을 나눠주는 상담원들에게 반갑게 인사한 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강력한 한파가 연일 계속된 10일 밤 서울역 인근 지하도에서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이 한 노숙인에게 담요와 감기약을 전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강력한 한파가 연일 계속된 10일 밤 서울역 인근 지하도에서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이 한 노숙인에게 담요와 감기약을 전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나는 이미 많으니 다른 사람들 나눠주라” 노숙인도

지하보도는 추위가 한결 덜했다. 지하보도 양끝 입구 쪽에 문이 달린 남대문 지하보도는 특히 그랬다. “마스크나 핫팩 필요하세요?”라며 상담원들이 수레를 끌고 지나가자 이불, 박스, 텐트 속에 있던 노숙인들이 몸을 일으켜 물건을 건네받았다. 한 교회에서 핫팩 한 박스와 저녁식사를 나눠주고 간 뒤였다. 김씨가 핫팩 하나를 건네자 한 노숙인은 머리맡을 가리키며 “나는 이미 많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 나눠주라”며 이미 자신이 받은 핫팩을 박스째 돌려줬다. 다른 노숙인들도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받았다. ‘내복이나 침낭 필요하면 센터로 와서 받아가시라’고 권유에 “욕심 내봐야 짐만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손수레에 담겨있던 빵은 남산입구 지하보도에서 동이 났다. 이 지하보도엔 문이 없어, 입을 열 대마다 하얀 입김이 새 나왔다. 한 노숙인은 “이것 없으면 어떻게 자냐”며 핫팩을 받아들었고, 다른 노숙인은 “이렇게 생긴 마스크가 없으면 안된다”며 케이에프(KF)-94 마스크를 받아 이불 속에 넣었다.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10일 밤 서울역 인근 지하도에서 거리 노숙인들에게 핫팩, 빵, 마스크 등을 나눠주며 노숙인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10일 밤 서울역 인근 지하도에서 거리 노숙인들에게 핫팩, 빵, 마스크 등을 나눠주며 노숙인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코로나19에 한파까지 겹쳐 어려움 가중된 노숙인들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의 겨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코로나19였다. 서울시와 센터 설명을 들어보면, 서울역 근처 노숙인 가운데 확진 판정을 받은 이는 있지만, 집단감염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방역을 위해 마스크 착용은 필수고, 노숙인 지원시설은 코로나19 검사결과 음성판정을 받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 19 방역에 한파까지 겹쳐 혹여나 집단감염이 발생할까봐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노숙인의 경우 역학조사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가급적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판정이 나와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휴대전화가 없는 노숙인들도 상당수여서 임시선별진료소 익명검사를 받기도 어렵다. 센터에서는 하루 두번씩 차량을 통해 서울 중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종교·구호단체들의 무료급식 서비스 등도 상당수 축소됐다. 때문에 그나마 지원이 끊기지 않고 있는 서울역 쪽으로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추세라 한다. 김씨는 “아웃리치 활동 중에 중요한 부분이 연계해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안내인데, 치과진료나 이·미용 서비스, 법률상담 등이 코로나19 때문에 필요한 선생님들이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회현역 지하보도에 노숙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김씨와 정씨는 센터로 복귀했다. 이들은 자원봉사활동 실비보조 성격으로 최저임금 정도의 시급을 받는다. 더운 날엔 더 덥고, 추운 날엔 더 추운 곳에서, 고집스러운 사람들을 만나가며 일주일에 다섯번씩 밤에 일하는 이유를 물었다. 활동한지 1년이 넘었다는 두 사람은 “그냥 한다”며 말을 아꼈다. ‘오래 활동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노숙인) 선생님들이나 같이 활동하시는 분들이 만나는 것이 좋았다. 드리는 것만 생각했지, 남는 게 무엇인지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력한 한파가 연일 계속된 10일 밤 서울역 인근 지하도에서 만난 한 노숙인이 차가운 바닥에 종이박스와 침낭을 깔고 그 위에 맨발로 앉아 있다. 그 앞에는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이 준 핫팩이 놓여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강력한 한파가 연일 계속된 10일 밤 서울역 인근 지하도에서 만난 한 노숙인이 차가운 바닥에 종이박스와 침낭을 깔고 그 위에 맨발로 앉아 있다. 그 앞에는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이 준 핫팩이 놓여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적 드문 휴일 밤, 온기 나르는 이들

밤 10시, 활동을 마친 상담원들은 심야조 상담원들과 ‘특이사항’을 공유했다. 서울역 쪽으로 나갔던, 공무원 퇴직 이후 10년 넘게 아웃리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노경준씨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40여명밖에 없었고, 음주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롯데마트 쪽에 ○○○씨가 계셨다”고 했다.

“이따가 센터로 모시고 와야겠네요” 이태용 실장이 답했다. 위험 상황에 놓인 노숙인들은 심야 활동조가 휠체어 등을 통해 센터로 옮긴다. 정씨도 활동 결과를 보고 했다. “새로운 분이 계셨냐”는 질문에 정씨는 스마트폰에 써놓았던 메모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국은행 지하도에 새로운 분이 서 계셨는데, 어디로 가실 것인지 여쭤봐도 말씀이 없었다. 가방에 돗자리 이불이 삐져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회의를 마치며 이태용 실장이 말했다. “저녁시간에 집중돼서 상담전화 등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각지대에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네요.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실장은 <한겨레>에 “노숙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다른 서비스로 인계하는 과정에 아웃리치 상담원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원래 야간에는 상담 중심 활동을 많이 했지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방한·방역 물품 제공과 위기개입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상담원들의 이런 활동이 생명을 보호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휴일 밤 서울 한복판은 행인도, 차량도 드물었다. 밤 11시가 되면 심야시간 활동조가 나갈 차례다. 거리에서 잠든 이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최소한의 보온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 센터 한쪽에선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보온용’ 페트병 수십개에 뜨거운 물이 채워지고 있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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