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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 30% 오르기도”…불법매립에 접경지 논이 사라진다

등록 2021-06-02 04:59수정 2021-06-02 08:14

현장 | 문산·장단반도 논 불법매립 극성
서울 등서 덤프트럭으로 흙 날라와 성토
장단반도 논 1년 새 31만㎡나 감소
비닐하우스·과수원·군사시설은 급증
“밭으로 지목전환 현금화 유리” 탓도

두루미 등 멸종위기종 서식지 훼손
파주시, 3만㎡ 원상복구 통보 ‘뒷북’
지난 1월20일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들판에서 한 재두루미 가족이 먹이를 먹고 있다.
지난 1월20일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들판에서 한 재두루미 가족이 먹이를 먹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일원 접경지역이 논 습지 불법 매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지역 논 습지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저어새 등 희귀 겨울철새를 비롯해 뜸부기, 수원청개구리, 맹꽁이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의 주요 서식지다.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접경지역의 논 습지 훼손을 이대로 방치하면 비무장지대 생태축 단절과 생물다양성의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들녘에서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으로 논을 메우는 매립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들녘에서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으로 논을 메우는 매립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임진강 개발도 막아내며 지켜온 논
서울서 건설 폐자재·쓰레기 싣고 와
5~6m 높이까지 마구잡이 성토…시는 ‘뒷북’

지난 28일 찾은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독수리전망대 인근과 임진강역 앞 마정리. 이 지역 논 곳곳에서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을 이용해 논을 메우는 매립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장을 안내한 마정리 주민인 노현기 ‘임진강∼디엠제트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6년간 농민과 시민사회가 연대해 임진강 준설 반대 운동을 통해 하천개발 사업을 막아내고 임진강 유역 논을 지켰는데 마을을 오가는 덤프트럭들을 보면 화가 나서 산책도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장산리 들녘의 한 논은 3000㎡ 이상 넓이를 허가도 받지 않은 채 5~6m 이상 높이로 불법 성토해 거대한 토성을 연상케 했다. 일부 농지는 콘크리트 조각 등 건설 폐자재와 하수 처리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인 슬러지까지 마구잡이로 매립해 주민들이 악취를 호소하는 등 민원이 빗발쳤다.

국토이용계획법에서는 2m 이상 절토·성토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파주시의 경우엔 1m 이상 성토할 경우 반드시 개발행위 허가를 받도록 기준을 강화한 도시계획조례를 시행 중이다.

파주시는 뒤늦게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파주시 관계자는 “해당 농경지의 경우 시에 개발행위 요청이 들어왔으면 허가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민 신고로 뒤늦게 알게 돼 해당 부서를 통해 원상복구하라고 통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습 침수지역이거나 농업기반시설이 약해 농사짓기 불리한 땅은 농가 편의를 위해 성토를 허용하고 있지만 경지 정리가 된 논은 식량안보와 생태 문제 등을 감안해 웬만하면 1m 이상 성토 허가를 해주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들녘에서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을 논을 메우는 매립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들녘에서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을 논을 메우는 매립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파주시는 현장조사를 거쳐 장산리 49-1, 55-2 일원 등 9필지 1만6567㎡와 마정리 14필지 1만3007㎡ 주인들에게 원상복구하도록 통보했고, 장산리 농지 7건도 불법 성토된 사실을 확인해 원상복구를 통보할 계획이다. 통보에도 원상복구가 되지 않을 경우엔 형사고발과 더불어 벌금 등을 부과할 방침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불법 매립된 논을 원상복구시킨다는 시의 방침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마정리 한 주민은 “성토하는 논을 보면 1m 이내로 적법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도로 높이에 맞춰 1m 이상으로 불법 성토하고 있다”며 “콘크리트 조각 등 건설 폐자재를 밑에다 깔고 그 위에 흙을 살짝 덮고 눈가림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상복구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외지 땅주인들 거래 쉽고 차익 노려
민통선 논, 콩밭·인삼밭·과수원으로
장남반도 논면적 1년새 31만㎡ 감소

접경지역 농지가 불법 매립되는 이유는 논보다 밭이 거래하기 쉽고 개발도 용이해 부동산값 상승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땅 소유주 70~80%가량은 외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문산읍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문권씨는 “논을 성토해 밭으로 지목 전환할 경우 땅값이 상승하고 현금화하기에도 유리해 외지인 토지주들이 논보다 밭을 선호하는 편이다. 실제 마정리의 경우 성토 전 3.3㎡(1평)당 30만원가량 하던 농지가 성토 뒤 40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평상시에도 많았는데 올해 들어 논 매립이 유독 많아졌다”며 “기존에 땅을 임대해 농사짓는 지역주민의 나이가 대부분 70~80살 이상이어서 앞으로 5~6년 지나면 실제로 농사지을 사람이 거의 없어 논의 밭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5월5일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마을인 백연리 들판 모습. 논이 메워져 축사나 인삼밭으로 바뀐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5월5일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마을인 백연리 들판 모습. 논이 메워져 축사나 인삼밭으로 바뀐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여기에 서울과 고양 등 대도시에서 지하철 공사장이나 아파트 재개발, 공장 건설 현장 등에서 나온 흙을 처리하는 업자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파주 지역 토지주나 농가를 접촉해 ‘회유’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파주시 관계자는 “서울 등 공사장 흙을 처리하려는 업자와, 땅 매매와 가치 상승에 유리하도록 지목을 변경하고자 하는 땅 소유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파주에 불법 성토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의 정비업자들이 고양이나 김포로는 못 가고 파주 민통선 등 저지대의 토지주를 회유해 무료로 실어 나르거나 평당 2만원가량 웃돈까지 주며 논에 매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노현기 위원장은 “논의 밭 전환은 개발 위주의 국토종합계획과 맞물려 파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추진되고 있다”며 “식량안보 문제도 나오는 만큼 쌀이 넘쳐서 논을 줄여도 된다는 식의,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정부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루미 등 위기종 월동먹이터 잃어
생물다양성 손실, 생태축 단절 ‘위기’

파주 민통선 지역 논들이 장단콩밭이나 인삼밭, 비닐하우스, 축사, 과수원, 창고 등으로 전환되면서 야생생물의 먹이터 넓이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국립대학교 이수동 교수팀의 ‘파주 장단반도 일대 토지이용 현황별 면적 및 비율’ 조사 보고서를 보면, 장단반도의 논은 2019년 2768만여㎡(17.02%)에서 지난해 2737만여㎡(16.83%)로 1년 새 31만㎡나 감소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묵논도 2019년 30만8336㎡에서 2020년 17만849㎡로 크게 줄었다. 반면 비닐하우스는 같은 기간 18만9204㎡에서 21만9568㎡로, 과수원은 97만5285㎡에서 117만5014㎡로 늘었고, 군사시설은 360만5558㎡에서 404만1912㎡로 증가했다.

민통선 밖 접경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파주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후 문산읍 지역에서만 논을 매립해 밭으로 지목 변경한 농지는 총 1만3000여㎡에 이른다.

지난 1월20일 경기 파주시 민통선 마을인 백연리 논에서 재두루미들이 무리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지난 1월20일 경기 파주시 민통선 마을인 백연리 논에서 재두루미들이 무리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문제는 파주, 연천, 철원 등 접경지역 논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생물인 두루미와 재두루미 등의 중요한 먹이터라는 점이다. 논이 축사나 비닐하우스 등으로 전환되면, 야생생물들의 서식 환경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의 경우 2010년 민통선에서 해제된 뒤 2013년 한탄강 변에 2차선 도로가 조성되고, 2017년 대규모 축사가 지어지면서 재두루미 개체 수가 10분의 1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수동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2014~2019년 임진강과 장단반도 일대에 출현하는 보호종은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검독수리, 매, 흰꼬리수리 등 총 16종에 이른다. 이 교수는 “파주는 철원·연천 등과 함께 두루미·재두루미의 월동지로 가치가 높은데 철원·연천 지역의 교란 시에 대체 월동지로 중요성이 높다”며 “논 경작지의 면적이 줄어들면 두루미류 월동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주/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녘에서 논을 메우는 매립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녘에서 논을 메우는 매립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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