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한남대민주동문회 부회장(왼쪽 둘째), 이종명 아산 송악교회 목사( ″ 셋째)가 군부독재 정권 당시 녹화사업 피해를 증언하고 프락치 의혹을 받는 김순호 치안감과 경찰국 신설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충남 도청 옆에 있던 충남기업사로 끌려갔어요. 대학생활을 다 적으라고 하고, 틀렸다고 때리고….”
5일 오전 11시 대전경찰청 정문 앞, ‘김순호 경찰국장 경질과 녹화공작 진상규명을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종명 아산 송악교회 목사는 1983년 9월에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털어놨다.
이 목사는 당시 목원대 3학년이자 학생군사교육단(ROTC) 요원이었다. 충남기업사는 ‘507보안사’, 그는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곳 지하 2층에서 고문당했다. 언제 누굴 만났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운동권 조직 등에 대해 추궁당했다.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서 맞아서 기억을 잃었다”, “누군지 모른다”고 대답할 때마다 폭행이 반복됐다고 한다.
어느 날 담당 조사관이 선·후배 이름과 주요 학습 일정이 빼곡히 적힌 상황판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그동안 받은 학생군사교육단 장학금도 물어내야 할 것’이라고 협박한 뒤 ‘학교 동향을 1일 보고 하라’고 회유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는 1일 보고를 하는 프락치가 됐으나 양심의 고통이 컸다. 일을 그만둔 뒤 제적당하고 시련을 겪었다. 그는 “평생 고통을 안고 살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동지들은 아직도 서로를 의심한다”고 밝혔다.
대전지역 민주화운동 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5일 오전 대전경찰청 앞에서 김순호 치안감 경질과 경찰국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대전민중의힘, 민주노총 대전본부, 한남대학교 민주동문회 등은 “밀정공작 의혹 김순호를 경질하고 경찰국 신설을 철회하라”, “국가폭력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녹화공작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선 이 목사 외에 김황식 한남대민주동문회 부회장도 고문 피해를 증언했다.
이들 단체는 “윤석열 정부가 신설한 행정안전부 경찰국 초대 국장에 오른 김순호 치안감은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를 밀고한 대가로 고속승진을 했다는 프락치 의혹을 받고 있다”며 “김 치안감의 고속승진 배경과 군사독재 정권이 자행한 녹화사업의 진실을 밝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관련자를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국 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정부에 김순호의 과거 밀정공작 의혹과 녹화사업에 대한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정부는 김순호를 즉각 경질하고 정부조직법에 어긋나는 경찰국 신설을 철회하라”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