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리스키) 우수리스크에선 고려인과 충북 예술인 등이 어우러진 조금 늦은 추석 축제가 열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00여㎞ 떨어진 우수리스크엔 연해주 정착 고려인의 절반인 1만5천여명이 산다.
축제는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가 주최하고, 연해주 역사 문화 관광 전문 한인 여행사 블라씨유 등이 도왔다. 이날 오후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촌 마당엔 2000여명이 몰렸다. 멀리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사는 고려인뿐 아니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 등 연해주에 사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찾았다. 고려인이 ‘추석’이란 이름으로 판을 벌이면, 연해주 일대 다양한 민족들도 ‘추수 감사’, ‘수확의 날’ 등의 뜻을 더해 축제를 즐긴다.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축제는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김니콜라이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장은 “추석 축제는 고려인만의 기념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이 한 데 어울려 즐기는 모두의 잔치다. 연해주 대표 축제”라고 밝혔다.
이날 추석 축제엔 충북민예총, 항일 독립군과 제주 4·3 등의 노래 맥을 잇는 산오락회, 청주 까치내호드기보존회 등이 참여해 흥을 돋웠다.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등의 초청으로 충북 예술인들이 축제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진도아리랑, 카투사의 노래 등을 선보였다. 마지막 곡 아리랑은 모든 관객이 함께 했다. 공연장 주변에선 떡메치기, 호드기(풀피리) 시연 등 한민족 전통 민속놀이 마당도 펼쳐졌다.
고려인 강니콜라이(85)씨는 “러시아인과 다양한 민족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다. 다만 남과 북이 여전히 분단돼 있어 동포로서 유감이다. 하루빨리 통일된 조국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충북민예총과 산오락회 등은 발해성터, 이상설 유허비 등에서도 공연을 했다. 산오락회 소리꾼 조애란(43)씨는 “고려인을 소외된 국외동포 정도로 생각했는데, 연해주 곳곳에 우리 문화를 심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놀랍고 고마웠다. 힘을 주러 왔다가 힘을 받아 간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우수리스크 블라씨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