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2018년 3월5일 전 직원 대상 월례 조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지사는 “우리는 오랜 기간 힘의 크기에 따라 계급을 결정짓는 남성중심의 권력질서 속에서 살아왔다”며 “이런 것에 따라 행해지는 모든 폭력이 다 희롱이고 차별”이라고 미투 운동 동참을 당부했다. 그날 저녁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제이티비시> 뉴스에 출연해 그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했다. 충남도 제공
2018년 3월 발생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환기하는 계기가 됐지만, 정작 문제가 일어났던 충청남도의 사후 조처나 제도개선 움직임은 없었다.
김지은씨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지 사흘 뒤인 2018년 3월8일 ‘충청남도 성희롱(폭력) 예방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하지만 이 대책은 2017년 말 충남도 공무원이 하급자인 기간제 여성직원을 성희롱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것으로, 안 전 지사 사퇴 전부터 준비된 방안이었다. 따라서 안 전 지사 사건은 언급되지 않았고, ‘기관장과 부서장의 책임 강화’ 부분에서도 기관장 관련 내용은 없었다.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은 없던 일인 것처럼 서술한 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두달 뒤인 2018년 5월 발간된 ‘충남도 성희롱 예방 대응 매뉴얼’에도 관리자로서 도지사의 역할을 강조할 뿐, 도지사가 성폭력의 가해자일 때 대응법은 빠져 있었다. 이순종 충남도 여성가족정책관은 “여성가족부 지침에 따라 작성하기 때문에 지자체마다 매뉴얼이 거의 비슷한 면이 있다. 직원 위주로 작성돼 있고, 도지사가 가해자일 때 내부 처리 절차는 없어 매뉴얼을 개정할 필요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당시에도 충남도는 검찰 수사를 이유로 도지사 성폭력 사건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사건 직후 내놓은 종합대책에서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특징과 원인을 따져 재발방지 대책을 추진할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말뿐이었다. 충남도 한 직원은 “관련 진상 조사나 특별한 대책 마련은 딱히 없었다. 성폭력 사건 뒤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 안 지사와 선긋기 하느라 바빴다”고 전했다.
그런 사이 도청 안에서는 김씨가 근무할 당시 일과 관련한 근거 없는 소문과 ‘충청 대권주자의 발목을 김씨가 잡았다’는 식의 비아냥도 이어졌다. 또 다른 한 직원은 “지금까지도 ‘안 지사가 억울한 면이 있다’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도청 안에 있다”고 말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성폭력 예방 교육 때 일반적인 성폭력 2차 피해 사례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나 김씨 사례를 인용한 적은 없다. 충남도의 치부인 도지사 사건을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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