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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된 유천동 왕버들이 잘려나간 사연은?

등록 2021-06-13 13:51수정 2021-06-13 22:12

대전 중구 유천동 왕버들 나무 이야기
2005년 보호수 해제되고 최근 땅 주인 바뀌며 잘려나가
대전에 있는 250년 수령의 왕버들 나무가 잘려나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시 중구 유천동 325-12번지에 있던 왕버들 나무는 1982년 대전시 보호수로 지정돼 23년 동안 중구청의 관리를 받았다. 지역에서는 이 나무의 수령이 300년에서 600년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보호수 지정 당시 전문가들은 나무의 수령을 약 210년으로 추정했다. 수령뿐 아니라 버드내라는 뜻의 유천동 지명과 연관해 보호수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유천동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고목이었다.

2005년 대전시는 이 나무의 보호수 지정을 해제했다. 나무의 가지가 한쪽으로 쏠리고 나무줄기 안이 비워져 시멘트를 채우는 등 모양이 나쁘고, 생육 상태도 좋지 않아 더는 보호수로서 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전시 관계자는 “2005년 해제 당시 나무 상태에 대한 전문 위원들의 조언을 받아 보호수 지정을 해제했다”며 “사유지에 있어 땅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대전 중구 유천동의 왕버들 나무 모습. 네이버 지도 뷰 갈무리
지난해 11월 대전 중구 유천동의 왕버들 나무 모습. 네이버 지도 뷰 갈무리
보호수 지정 해제 뒤로도 왕버들 나무는 잘 살아 있었다. 포털사이트 지도로 확인해보니, 2019년 10월에는 나무의 잎이 무성했고, 지난해 11월에도 잎이 남아있었다. 2005년 이후 몇 차례 땅 주인이 바뀌었지만, 왕버들 나무는 16년 동안 제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지난 3월 다시 땅 소유주가 바뀌며 상황이 달라졌다. 바뀐 땅 주인은 나무를 없앤 뒤 그 자리를 개발하려 했고, 중구청에 나무를 옮길 수 있는지 문의했다. 중구청은 나무를 옮겼을 때 살 가능성이 적다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20일께 땅 주인은 왕버들 나무를 벴다.

왕버들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구의회 서명석 구의원은 지난해 11월 행정사무감사 때 중구청과 대전시에 이 나무의 보존·관리를 요청했다. 당시 서 의원은 “유천동을 상징하는 보물 같은 버드나무가 지금 방치돼 있다”며 “현장에 가 나무를 확인하고 나무를 보존하고 관리할 방법을 연구해달라”고 말했다.

2019년 10월 대전 중구 유천동의 왕버들 나무 모습. 네이버 지도 뷰 갈무리
2019년 10월 대전 중구 유천동의 왕버들 나무 모습. 네이버 지도 뷰 갈무리
지난 3월에는 중구청 자유게시판에 ‘유천 버드내 마을 주민일동’이라며 민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주민은 “유구한 역사와 애환을 품고 있는 왕버들 나무가 계속 살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2005년 이후 2014년과 2016년, 지난해까지 3차례에 걸쳐 대전시에 유천동 왕버들 나무의 보호수 재지정을 요청했으나 사유지에 있고 보호수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해명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중구청의 보호수 재지정 요청에 대해선 예전 일이라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서병기 배재대 원예산림학과 교수는 “500년 이상 된 계수나무의 곁가지 하나가 살아남았는데도 그걸 계속 보살피는 일본의 사례도 있다”며 “2019년과 지난해 사진을 보면 나무의 새잎이 나 살아 있었다. 나무를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본다. 그런 나무는 한 번 없어지면 수백 년의 문화와 시간이 사라지는 것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지난 8일 대전 중구 유천동 왕버들 나무가 있던 터의 모습. 나무 있던 자리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최예린 기자
지난 8일 대전 중구 유천동 왕버들 나무가 있던 터의 모습. 나무 있던 자리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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