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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부실 급식, 저가 경쟁이 답? ‘학교 급식’처럼 할 순 없나

등록 2021-10-07 05:00수정 2021-10-07 11:24

국방부 ‘식재료 경쟁입찰 도입’ 논란
온라인에 부실 급식 폭로 잇따르자
‘선 식단 구성·후 식재료 조달’ 구상
전자조달 시스템 도입 계획도 밝혀

기존 납품조합·접경지 군납농가들
“저가 경쟁에 따른 농가 피해” 반발
전문가들 “지역상생 조달체계 필요”
군 급식 부실을 성토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사진. 갈무리
군 급식 부실을 성토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사진. 갈무리

‘소고기 없이 당면만 있는 잡채, 밥·깍두기와 나물 한 숟가락, 오징어 없는 오징어국….’

최근 부실한 군 급식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는 군부대 급식 부실을 폭로하는 ‘분노의 인증 사진’이 잇따르면서 군당국에 엄청난 비판과 성토가 쏟아졌다.

이에 국방부가 ‘선 식단편성, 후 식재료 경쟁조달’이라는 해법을 내놨다. 영양사들이 장병들의 선호와 영양 균형을 고려해 식단을 정하면, 그에 맞는 식재료를 유통업체들의 경쟁조달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군 급식에도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국방부는 지난 7월 학교급식 시스템을 본떠 만든 ‘장병급식 전자조달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런 방침은 여러 파장을 낳고 있다. 당장 기존 수의계약을 맺고 농축산물을 납품해오던 조합이 반발하고 나섰다. 단순한 경쟁체제 전환이 아닌 지역상생형 공적조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천에서 30여년 동안 닭을 키워 군에 납품해온 농민 박현수씨가 서울시 용산구 국방부에 설치된 근조화환 앞에서 군 급식 경쟁입찰 전환 중단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박현수씨 제공
화천에서 30여년 동안 닭을 키워 군에 납품해온 농민 박현수씨가 서울시 용산구 국방부에 설치된 근조화환 앞에서 군 급식 경쟁입찰 전환 중단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박현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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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하는 기존 납품 조합

“경쟁입찰이 되면 저가경쟁에 따른 장병급식 질 저하와 축산농가 피해 등이 우려됩니다. 군 급식 경쟁입찰 전환을 즉각 중단해주십시오.”

지난달 27일 서울시 용산구 국방부 앞에 10여개의 근조화환이 세워졌다. 화환에는 ‘수입 농축산물 권장하는 군납 입찰방식 중단’, ‘대기업 배 불리는 군 급식 개편 중단’, ‘접경지역 농민 죽이는 군납 경쟁입찰 철회’, ‘식량안보 역행하는 군납 입찰방식 중단’, ‘농축산업 생산기반 흔드는 경쟁입찰 철회’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30여년 동안 닭을 키워 군에 납품해왔다는 박현수(57)씨는 “매달 1만3천여마리를 출하하는데 전량 군납이다. 강원도는 마땅한 판로도 없어, 군납 아니면 먹고살 길이 없다”며 이날 근조화환 옆에서 1인시위를 진행했다. 박씨는 “가뜩이나 군 병력이 감소하면서 군납 물량도 줄어드는 등 어려움이 많은데 군납이 경쟁입찰로 바뀌면 축산뿐 아니라 접경지역 농민 모두 폐업밖에는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금까지 군 급식은 1970년 체결한 ‘군 급식 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에 따라 국내 1천여개 농·축·수협 가운데 90여곳이 1년 단위의 수의계약을 통해 사전에 정해진 금액으로 농수축산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매년 연말 급식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다음해 먹을 품목의 기준량을 정하면 메뉴를 끼워 맞추는 식이다.

국방부는 현행 군 급식 시스템이 군납조합 등 공급자 위주로 짜여 장병들의 선호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돼지·닭 등 육류는 마리당으로 계약돼 닭다리·돼지목살 등 장병들이 선호하는 부위만 납품받지 못하고, 농·축·수협을 통하는 만큼 국내산만 납품될 수 있어 충분한 양이 제공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존 군납조합 등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조달시스템을 도입해 농·수·축협뿐 아니라 다수의 공급자가 참여하게 해 현재의 수의계약을 경쟁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축산물 군납조합협의회 소속 조합장들이 지난달 29일 국방부 앞에서 군 급식 경쟁입찰 전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춘천철원화천양구축협 제공
전국 축산물 군납조합협의회 소속 조합장들이 지난달 29일 국방부 앞에서 군 급식 경쟁입찰 전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춘천철원화천양구축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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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역 군납 농가 반발

국방부 방침에 밥그릇을 놓게 될 처지에 놓인 조합 등은 거세게 반발한다. 전국 축산물 군납조합협의회 조합장 일동은 지난달 29일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 100% 국내산 축산물 공급으로 품질과 위생 등이 보장됐는데, 경쟁입찰을 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이 공급돼 식중독 등 장병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대기업 식자재 업체와 축산물 수입업자를 위한 군 급식 경쟁입찰 전환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성명을 내어 “단편적으로는 경쟁입찰로 가격 경쟁력이 높은 수입 농축산물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급식의 질을 높이는 데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급 불안으로 인한 품귀·가격급등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고, 국산 농축산물을 활용하지 않으면서 자주국방을 논할 수도 없다”며 원점 재검토를 촉구했다.

농민들도 경쟁조달 방식이 도입되면 군납시장이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식자재 업체에 잠식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산 축산물과 농산물이 값싼 외국산으로 대체되면 그동안 군납을 맡아온 접경지역 농가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군 급식 식재료 시장 규모는 연간 1조2천억원에 이른다.

이중호 춘천철원화천양구축협 조합장은 “군 급식 부실은 낮은 급식단가, 영양사·조리병이 부족한 군 조리 시스템, 배식 관리 문제 때문이다. 경쟁입찰 전환은 계약재배를 통한 군 급식 안정성 확보와 농어업인 소득 증대 등 군당국이 협정에서 명기한 군 급식의 목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농업정책보험금융원 1층 회의실에서 ‘군 급식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군 급식 개선 추진에 따른 전문가 토론을 진행했다. 위원회 제공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농업정책보험금융원 1층 회의실에서 ‘군 급식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군 급식 개선 추진에 따른 전문가 토론을 진행했다. 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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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급식, 경쟁입찰이 해법?

급식 질을 높이면서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지역상생형 공적조달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농사·수확의 옛말) 부소장은 “성급한 경쟁입찰 도입으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공성 강화 △장병 건강 우선 △지역사회 기여·상생을 원칙으로 한 ‘지역 단위 기획생산체계’ 구축을 제안한다. 농협 등 군납조합에 집중된 식재료 생산·공급의 권한과 책임을 먹거리통합지원센터나 학교급식센터 등과 같은 공적 주체에 부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센터에는 생산자인 농민과 지자체 담당자, 농협, 국방부 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이대순 포천시 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도 “군납조합은 50년간 군 급식을 독점했고, 이는 생산농가에도 군 장병에게도 이득이 되지 못했다. 다만 경쟁입찰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대안으로 볼 수 없으며, 부실 급식 사태를 키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요를 중심으로 한 농가 계약재배 확대와 저가경쟁이 아닌 공공성이 보장되는 조달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생산자부터 장병까지 군 급식 공급을 위한 단계마다 각 주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협의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완석 전국먹거리연대 상임대표(한살림연합 상임대표)는 “우수 공공급식 사례인 학교급식 시스템을 차용하라고 요구했지만, 국방부에서는 전자조달시스템만 편의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이는 군부대 인근 농민을 배제한 반쪽짜리 식재료 조달시스템이다. 이미 우리는 학교급식 분야에서 초기 민간위탁 등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는 공적조달체계를 이용해 친환경 학교급식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급식에 견줘도 터무니없이 낮은 급식단가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21년 장병 기본급식비는 한끼에 2930원으로 고등학생 3571원(서울시 1101명 이상 학교 기준)의 80% 수준에 그친다. 전문성 낮은 조리병 중심 조리인력 구조와 낙후한 취사장 시설 등도 문제다. 150명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하루에 한끼만 제공하는데 조리사 1명과 조리원 2명이 근무한다. 반면, 150명 규모의 군부대에선 하루에 세끼를 제공하는데 조리병 2명과 민간조리원 1명이 모든 조리업무를 담당하는 실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경쟁조달 등 시범사업을 통해 여러 본보기를 살펴보고 있으며, 국내·지역산 우선 사용 원칙을 반영해 농어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군 급식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식재료 경쟁조달뿐 아니라 인력과 시설 확충 등 종합적인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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