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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논에 유실된 지뢰…철원 농민, 벼베기 대신 발만 동동

등록 2020-09-17 14:56수정 2020-09-18 02:42

태풍·집중호우 때 지뢰 떠내려 온 접경지역
폭발 사고 우려 수확 미루며 정부대책 요구
“군, 피해감수 각서 쓰면 탐지해준다니” 분통
철원군 민통선 안 수해 피해 마을에서 육군 5공병여단 장병들이 유실됐을지 모를 지뢰를 찾고 있다. 육군 5군단 제공
철원군 민통선 안 수해 피해 마을에서 육군 5공병여단 장병들이 유실됐을지 모를 지뢰를 찾고 있다. 육군 5군단 제공

“철원은 벼 품종이 조생종이라 벌써 수확했어야 하는데 지뢰가 무서워 벼베기를 못 하고 있습니다.”

민통선 마을인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강산리에서 벼농사를 짓는 서경연(60)씨는 16일 “목을 걸고 위험한 벼베기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군에서 지뢰 탐색을 해준다지만 탐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벼 피해는 누가 보상해주느냐”고 하소연했다.

서씨 등 접경지역 농민들이 노랗게 익어 고개 숙인 벼를 보고도 발만 동동 구르는 이유는 지난 8월 내린 기록적인 폭우에 비무장지대(DMZ) 등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묻혀 있던 지뢰가 떠내려 왔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접경지역의 논과 밭에서 발견된 지뢰만 150여발에 이르는데, 강원 고성 해안에서 발견된 빈 목함지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군 지뢰인 엠(M)14 대인지뢰다. 엠14 대인지뢰는 통조림 모양의 플라스틱 원통형으로 물에도 잘 떠 폭우에 휩쓸릴 경우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지게 된다.

실제 지난 10일 인제군 민통선 안에서 수해 복구작업을 하던 부사관(23)이 지뢰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해 발목을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군 당국은 민통선 지역을 중심으로 유실 지뢰 탐색에 나섰으나 민가와 논둑 등을 제외한 논에서는 탐색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뢰 탐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벼가 밟히는 등 피해와 관련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지뢰 탐색 조건으로 ‘피해를 감수한다’는 각서를 요구했지만,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강산리 농민 최종수(52)씨는 지난 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폭우로 유실된 접경지역 지뢰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최씨는 “논에서 지뢰가 발견돼 철원군과 군부대 등에 전수조사와 피해대책을 요구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있는 만큼 대통령께서 나서서 현안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청와대까지 왔다”고 호소했다.

강원도와 철원군, 농민들은 지난 11일 유실 지뢰 관련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손실보상금 지급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대신 지뢰에 비교적 안전한 대형 콤바인을 농가에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특별 교부금 3억원을 철원군에 지원해 대형 콤바인을 구입해 농가에 임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3억원으로 살 수 있는 대형 콤바인은 2대에 불과해 수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강원도의회가 16일 오후 도의회 세미나실에서 접경지역 지뢰 유실에 따른 농민 안전보장과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강원도의회 제공
강원도의회가 16일 오후 도의회 세미나실에서 접경지역 지뢰 유실에 따른 농민 안전보장과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강원도의회 제공

강원도의회는 이날 △접경지역 지뢰 유실에 따른 농민의 생명과 안전보장, 재발방지 대책 마련 △농작물 피해를 현실 수준에서 보상 △풍수해보험에 지뢰 피해 등 접경지역 관련 보장 특약 신설 등을 담은 건의문을 발표했다. 곽도영 강원도의장은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 유실 지뢰 탐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까지 감당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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