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의 한 농장에서 농민들이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희망씨, 지역에서 만나다’ “들쭉날쭉하지만, 평일 점심때 50명 안팎의 손님들이 식사하러 옵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80명까지도 오셨어요.”
지난달 21일 낮 12시 30분께 찾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농가레스토랑 행복정거장 효자점. 계산대의 직원에게 코로나19 사태 상황에서 형편이 어떠하냐고 묻자 답변한 내용이다. 코로나19 확산의 충격이 이곳이라고 비켜 갈 리 없었다. 지역의 소농과 고령층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식재료로 쓰는 이 농가레스토랑도 평소보다 손님이 30~40%가량 줄었다.
하지만 농민과 소비자의 연결 , 지역 일자리 창출이란 원칙은 여전하다. 김동민 완주군 먹거리정책과 로컬푸드팀장은 “이 농가레스토랑은 소비자들의 교류 장소와 여성의 일자리 창출이 주된 목적”이라며 “여전히 직매장과 농가레스토랑의 연계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이곳을 포함한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에서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사무인력(16명)을 포함해 직매장(6곳 38명) ·레스토랑(3곳 26명) ·두유공장(5명) 등에 모두 85명이 정규직으로 일한다
지난달 21일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의 전주효자점 직매장에서 소비자들이 과일 등을 고르고 있다. 박임근 기자
전북 완주군은 ‘로컬푸드 1번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로컬푸드 조직이 2010년 7월에 출범했고, 첫 직매장이 2012년 4월에 문을 열었으니 역사가 10년이 넘는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 농산물로, 흔히 반경 50㎞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가리킨다.
대개의 경우 로컬푸드 매장이라도 안정적인 공급 물량의 확보를 위해서는 대농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 소농들을 모으기도, 이들과 전체적인 생산계획을 짜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완주군은 생산-공급 현지화에 더해 소외된 농민을 보듬는다는 목표도 세웠다. 농산물 유통 혁신이 소농과 고령농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판로 확보에 어려움이 큰 소농·가족농·여성농 등이 생산한 적은 양의 농산물도 납품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체계를 구축했다. 군은 주민들과 힘을 모아 로컬푸드 직매장을 열고 지역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에게 연결했다. 소비자들의 호응 속에 직매장은 로컬푸드조합과 농협 등에 속한 12곳으로 늘었다.
지난달 21일 전주효자점의 농가레스토랑에서 이용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박임근 기자
지난해까지 로컬푸드에 참여한 완주 지역 농가는 1700여가구에 이른다. 직매장이 처음 문을 연 2012년 당시 600여 농가가 참여했던 것에 견주면 3배 가까이 늘었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의 소비자 회원은 8만명에 이른다. 지역 내 자급 시스템이 자리 잡은 셈이다.
완주군을 향한 귀농귀촌 인구도 덩달아 늘었다. 통계청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가 공동 발표한 ‘2020년 귀농어 ·귀촌인 통계 ’를 보면 지난해 완주군 귀농귀촌인은 3637가구, 4793명으로 전북 지역 전체의 22%를 차지한다. 전북 지역 시 ·군 평균의 3배 수준이다.
완주군은 “농산물 판로 확보와 두부 ·장류 등 마을 단위 공동체사업 등 귀농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며 “‘완주군 농촌 살아보기’도 도시민들의 완주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농촌 살아보기는 최대 6개월 동안 완주 지역에서 직접 살면서 농사를 짓는 등 농촌을 알아가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이다.
완주로 귀농한 이들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쉽게 내다 팔 수 있다는 것을 큰 장점으로 꼽는다. 농사일만큼 영업이 중요한 시대인데, 완주의 로컬푸드 시스템이 든든한 언덕이 돼주기 때문이다. 2016년 경기도에서 아무런 연고가 없던 완주군 소양면으로 귀농한 김경일 (59)씨는 “땅을 빌려 비닐하우스 10동에서 채소 농사를 짓고 있는데, 제값을 받는 판로가 확보돼 많은 도움을 받는다. 다른 공판장에 상추를 내놓으면 한 상자 (4 ㎏)에 5천원 정도를 받지만, 로컬푸드 직매장에서는 2만원가량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 농민이 로컬푸드 직매장에 와서 농산물을 보며 연구를 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완주 로컬푸드를 시작부터 참여해 궤도에 오르도록 이끌었던 나영삼 ㈜지역파트너플러스 본부장은 “로컬푸드에는 소농도 소득을 낼 수 있다는 판로 확보의 이점뿐 아니라 , 사회적 경제의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 사회적 이로움이 있다 . 부모세대는 ‘농사를 죽어도 자식에게 안 물려준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농업이 직업으로도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수년 전 자리를 옮긴 나 본부장은 지역파트너플러스에서 지역푸드 플랜 등 농업·농촌과 관련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우선 치솟는 임대료는 판로 확보에 필수인 직매장 확대에 치명적이다. 김춘만 완주군 먹거리정책과장은 “규모를 키우기 위해 직매장을 늘려야 한다 . 하지만 전북혁신점을 개소하는 데 임대료 등 약 100억원이 들었다”며 “예산이 부족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판로 확대를 위해 서울 송파구 등으로 학교 ·보육시설의 급식을 위한 식자재 공급 관계 시장을 넓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완주 지역 소농들이 자신의 통장을 보여주고 있다. 완주군 제공
소농과 고령농 등을 살리겠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점차 대농에게 수익이 집중되는 양극화 현상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재 로컬푸드 수익의 많은 양을 대농이 가져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통상 재배면적 기준으로 소농(1㏊ 미만), 중농(1㏊ 이상~3㏊ 미만), 대농(3㏊ 이상)을 구분한다. 이근석 완주소셜굿즈센터 이사장은 “농민이 고령화하면서 ‘당일 수확, 당일 판매’ 원칙 적용이 어려워지기도 해, 읍·면 단위에서 해당 농산물을 소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또 통합푸드시스템을 만들어 소농의 수익이 보장되는 방안도 찾고 있다 ”고 말했다.
완주소셜굿즈센터 누리집에 나오는 홍보물 갈무리.
한편, 완주에서는 지갑·도자기와 같은 공예품, 화장지 ·물티슈를 비롯한 생활필수품 생산과 판매 , 돌봄 ·보육 ·가사 등 사회서비스와 관광 ·체험 ·교육과 연계된 문화예술상품 개발 등 분야에서 사회적 경제 실험도 활발하다. 완주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경제의 유 ·무형 상품을 포괄해 ‘소셜굿즈’라고 부른다 .
로컬푸드와 소셜굿즈 활성화는 주민들 참여에 기반해 주민들의 소득을 올리고 삶의 질을 개선해낸 지역 혁신의 대표 사례다 . 로컬푸드 및 소셜굿즈와 관련한 완주의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은 2016년 각각 5곳과 74곳에서 지난해에는 25곳과 157곳으로 늘었다 .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이사장은 “완주에서는 행정과 시민사회가 단단하게 결합했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단순한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의 주체로 함께 성장했다”며 “지역 혁신의 성공은 결국 사람의 변화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연도별 완주 지역 귀농귀촌 가구수와 인구수. 자료 완주군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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