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이이남아트뮤지엄에서 열린 ‘밝히고 비추는’전 개막식에서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이이남 미디어아트 작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희영 기획자 제공
화면 속 한무리의 농부 가족이 식사하고 있다. 감자만 있는 조촐한 식탁이지만 촛불이 밝게 비추며 풍성함이 느껴진다. 화면을 둘러싼 진짜 촛대의 촛불도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며 따스함마저 감돈다.
9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이이남아트뮤지엄은 수백개의 촛대와 미디어아트가 어우러져 고요한 분위기가 엿보였다.
이곳에서는 이달 7일부터 내년 2월13일까지 ‘밝히고 비추는’을 주제로 성진기(81)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와 이이남(52) 미디어아트 작가가 협업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는 성 교수가 평생 모은 촛대 200여개와 이 작가의 촛불 주제 미디어작품 10여점을 선보인다.
촛대에는 성 교수의 40년 여정이 담겨 있다. 1980년대 초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파견됐던 그는 벼룩시장을 구경하던 중 우연히 촛대 하나를 사면서 촛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매일 밤 작은 촛대에 불을 밝히며 연구생활의 외로움을 달랬던 성 교수는 지인들에게 촛대를 선물하고자 했던 수집을 시작했다. 40여년간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촛대 500여개를 모은 성 교수는 이번 전시를 위해 200여개를 엄선했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이이남아트뮤지엄에서 내년 2월13일까지 전시하는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의 촛대 수집품.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청동으로 만든 고풍스러운 촛대부터 왕관 모양의 철제 촛대, 도자기로 만든 천사모양 촛대까지 금속, 나무, 유리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소장품을 전시한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빛’이 담긴 작품들을 제작했다.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속 소박한 식탁을 밝혀주는 촛불, 촛불을 든 아이의 작은 손이 인상적인 조르주 라 투르의 <목수 성 요셉>, 성스러운 기운을 품은 라 투루의 또 다른 작품 <작은 등불 앞의 막달라 마리아>,게르하르 리히터의 <촛불> 등을 선보인다.
전시 주제는 빛이지만 목적은 위로와 희망 전달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지난해 여름 성 교수와 이 작가, 박성수 전남대 경영학부 명예교수, 최옥수 사진작가, 김명준·문희영 전시기획자, 정서연 푸르니보육지원재단 책임연구원 등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위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전시를 열기로 결정했다. 초 제작자 이창규·박란규씨는 전시 취지에 공감하며 초를 지원했고 한국전력공사도 후원에 나섰다.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가 40여년간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촛대와 이이남 작가의 <피에타> 작품.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성 교수는 “촛불은 인류에게 고귀한 염원을 일깨워 준 존재로, 지금도 촛대 끝에 묻어 있는 촛농을 보면 촛불과 함께 한 삶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며 “이 빛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작가 또한 “이 빛이 우리 모두의 빛이 돼 예술로 많은 이들을 보듬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전시를 기획한 문희영씨는 “과거의 빛을 상징하는 촛불과 촛대, 현재와 미래의 빛을 상징하는 미디어아트가 만나 모두의 마음을 밝히고자 한다. 긴 터널 같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시기에 관람객들이 잠시나마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연계전시로 <문화방송>(MBC)의 유튜브 채널 ‘오느른’의 시골 밤 영상작품을 선보이는 ‘굿나잇’이 내년 2월28일까지 열린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