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넛씩 묶여 떠난 그대들, 혼백이라도 부디 형제처럼 지내소서.”
전남 장흥에서 한국전쟁 때 수장된 민간인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71년 만에 열렸다. 장흥은 희생자가 많았는데도 좌우익 대립의 앙금이 남아 있어 다른 지역보다 과거사 규명과 희생자 진혼의 발걸음이 더뎠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장흥유족회, 장흥 수문리 마을공동체, 장흥문화공작소 등이 22일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선착장에서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봉행했다. 용왕신에게 고하는 소리로 개막한 위령제는 초혼굿, 씻김굿, 축문 낭독과 헌작 분향 등으로 이어졌다. 유족들은 무심한 바다를 향해 혼백을 담은 짚단을 불사르고, 국화와 연꽃 송이를 던지며 여태껏 주검조차 수습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눈물을 훔쳤다. 조계룡(84) 장흥유족회장은 “13살 때 아버지를 잃고 한 달 동안 이 바닷가를 샅샅이 뒤졌다”며 “지금이라도 발굴해 양지쪽에 묻어드려야 눈을 감을 수 있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장흥에선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1차 조사 때 한명이 신청해 희생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 유족이 2015년 보상을 받자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유족들이 진실규명에 관심을 보여 유족회가 결성됐다. 내년 1월에 시작될 2차 조사에는 70~80명이 신청을 했다. 유족들은 2차 조사를 앞두고 진상규명과 주검 발굴, 명예회복 등을 위해 위령제를 마련했다.
장흥에선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소집된 보도연맹원 중 지도자급이 장흥경찰서에 갇혔다. 그보다 석 달 전 만들어진 장흥지역 보도연맹 회원은 1천여명이었다. 이 중 경찰서에 수감됐던 45명은 같은 해 7월22일 밤 11시 트럭 짐칸에 실려 득량만 바다로 끌려갔다. 낌새를 차린 한명이 안양면 경계 미륵댕이 굽잇길에서 탈출했다. 아홉명은 안양면 해창저수지 부근 탕수배기에서 뛰어내려 달아나다 총에 맞아 숨졌다. 이어 수문리 앞바다에 도착한 35명은 항구에서 배에 태워져 300m쯤 나아간 뒤 서너명씩 새끼줄에 묶이고 무거운 돌멩이를 매단 채 바다에 던져졌다. 이런 만행은 탈출한 보도연맹원 한명과 당시 배를 내줬던 선주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유족들이 한 달 넘게 바다를 수색했어도 주검도 유품도 나오지 않았다. 장흥문화공작소는 지난 10월부터 석 달 동안 10개 읍·면의 유족들을 만나며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조각을 맞췄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