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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으로 먹고 살던 산골 오지의 기후 위기 극복 비결은

등록 2022-02-24 04:59수정 2022-02-24 09:31

전국 8대 오지 전북 완주군 동상면
기후변화 위기에 연대의식으로 새바람
소득뿐 아니라 생태·문화 활동도 활발
완주군 동상면의 곶감 말리는 전경. 완주군 제공
완주군 동상면의 곶감 말리는 전경. 완주군 제공

“고로쇠 수액은 양지보다 음지에서 더 많이 나옵니다. 산에 있는 나무들에서 호스로 산 아래 집까지 연결해 수액을 받아내는 거죠.”

지난 10일 오전 9시30분께 전북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운장산 자락에서 만난 김동현(57)씨가 고로쇠나무에 설치된 호스를 점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13년 전 귀농한 김씨는 마을에서 고로쇠 및 곶감 작목반 총무를 맡고 있다. 해마다 농한기인 겨울철에 고로쇠 수액을 채취해 소득에 보탠다. 겨울 고로쇠 작업이 끝나면 4월 두릅 2천그루, 가을녘 곶감·대봉시 600그루 등으로 짭짤한 소득을 올린다.

‘성공한 귀농인’으로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강의하고, 마을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멘토이기도 한 김씨는 “어디는 귀농하면 원주민과 갈등도 있다지만 여긴 그런 텃세를 느끼지 못했다. 따뜻하게 대해주고, 여러가지 것들을 가르쳐주신 동네 주민과 어르신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주민 김동현씨가 지난 10일 자신의 집에서 정화한 고로쇠 물을 페트병에 담고 있다. 박임근 기자
주민 김동현씨가 지난 10일 자신의 집에서 정화한 고로쇠 물을 페트병에 담고 있다. 박임근 기자

김씨가 터 잡은 완주군 동상면은 면적이 106.51㎢로 서울시 6분의 1 수준이지만, 92%가 임야여서 인구는 593가구 1079명(지난달 말 기준)에 불과하다. 주변이 운장산·연석산·원등산 등 굽이진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 산골로 전국 8대 오지 중 하나로도 꼽힌다. “산세가 험해 논·밭농사는 주민들 먹고살 만큼만 짓고, 돈은 곶감으로 모았다”던 이곳 동상면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완주군 동상면 지도와 현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곶감에서 두릅으로

해발 500~800m 고지대에 사는 주민들은 대대로 곶감을 만들어 팔면서 삶을 일궈왔다. 주·야간 기온 차가 큰 운장산 자락에서 친환경으로 재배한 감을 자연 건조한 ‘동상곶감’은 맛과 영양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으로, 조선 말기 고종에게 진상한 뒤로 ‘고종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선분홍빛인 일반 곶감과 달리 검은색에 가까운 게 특징이다.

동상면민운동장에서 40분가량 산을 오르면 7부 능선쯤에 위치한 수령 360년이 넘은 고종시 시조목이 있다. 감 수확을 앞둔 9월 말~10월 초 사이 감 재배 농가와 주민들은 ‘고종시 시조목’에서 감 풍작을 바라는 기원제를 지낸다. 10년 전부터는 ‘고종시 감의 날’로 이름까지 정해, 면민들과 완주군수 등도 참여하는 행사가 됐다.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이 곶감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모습. 완주군 제공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이 곶감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모습. 완주군 제공

하지만 최근 마을공동체는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곶감 생산 농가와 양이 2019년 101 농가, 409동(1동=감 1만개)에서 2020년 73 농가, 195동으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1년 만에 농가는 30%가량 줄고, 생산량은 반토막이 났다. 기후변화 여파로 감 수확이 크게 줄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남은 주민들은 다시 시조목 아래 모였다. 살길을 열어준 시조목 아래서 다시 ‘두릅’이라는 길을 찾았다. 두릅은 동상면처럼 산악지형에서 자라고 내한성이 강한 식물이다. 마을 주민들은 완주군에 특화단지 조성을 제안했다.

완주군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농가 11곳에서 두릅 1만1천그루를 직접 심어 특화단지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올해에도 농가를 확대하고, 두릅 재배 선진지 견학도 다녀올 방침이다.

■ 힐링할 수 있는 둘레길 조성

곶감에서 두릅으로의 소득 다변화를 꾀한 주민들 가운데는 생태·문화로 눈을 돌린 이도 있다.

호남평야를 적시는 만경강 발원지인 동상면 사봉리 밤티마을 밤샘 근처에서 동상면민운동장까지 8.7㎞ 구간에 둘레길 코스 발굴에 나선 밤티마을 주민 박영환(44)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씨가 제안한 ‘만경강 도보여행길’은 군 문화도시지원센터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주민 모임과 단체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연결하고, 영상기록을 만드는 등 홍보에 나섰다. 지난해 동상면을 포함한 완주 만경강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11월 추천 관광지 ‘환경을 지키는 착한 발걸음’ 테마 6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씨 등은 지난달 26일 이정표 관리와 확인 등 둘레길 정비·보완을 위한 답사를 다녀왔다. 앞으로 주기적인 정화사업과 함께 화장실·벤치 등 편의시설을 갖추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박씨는 “둘레길을 제대로 갖추면 외지인들이 치유를 위해 (동상면을) 찾을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여서 대단위 행락객보다 가족 단위로 온다”며 “결국 핵심은 ‘이야기’가 있는 관광자원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에 이야기를 담아 가족들이 그 길과 이야기를 함께 즐기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3월 만경강 도보여행길 걷기에 앞서 발원지인 밤샘에서 촬영한 모습. 박영환씨 제공
지난해 3월 만경강 도보여행길 걷기에 앞서 발원지인 밤샘에서 촬영한 모습. 박영환씨 제공

■ 시와 노래와 인심이 있는

지난해 4월 동상면민들은 고된 삶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구술한 시들을 묶어 시집을 내기도 했다. 면장이었던 박병윤(53)씨가 2020년부터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구술을 받았고, 7살짜리 어린이부터 100살이 넘는 노인까지 100여명이 시인이 됐다. 그렇게 채록해 모은 시 150여편이 수록된 시집 이름은 <동상이몽: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 .

‘같은 처지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는 의미의 고사성어 동상이몽 (同床異夢)이 아니라, ‘동상면이 꾸는 두개 꿈’이라는 뜻의 동상이몽(東上二夢)이다. 첫번째는 오래전에 동상·대아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이 지역의 역사 찾기이고, 두 번째는 국내 8대 오지라는 동상면 깡촌에서 주민들이 예술가로 변해가는 꿈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최근 음악도 얹어졌다.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동상면 사봉리 묵계마을 주변 은행나무 숲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숲 8265㎡(2500평)를 알리자며 마련된 음악회 제목은 ‘참 예쁜 가을 스케치’였다. 주민 장기자랑과 박강수 가수 공연이 더해졌다.

지난해 10월 동상면에서 음악회가 열려 주민들이 직접 색소폰을 연주하며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지난해 10월 동상면에서 음악회가 열려 주민들이 직접 색소폰을 연주하며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그래서였을까. 지난해 말 화재로 집을 잃은 이웃에게 100여 주민과 단체·기관이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성금 700여만원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최귀호(81) 전 동상면장은 “동상면은 산세가 험하고, 6·25 당시 전투도 벌어졌던 지역이다. 주민들이 희생된 아픔이 있고, 감을 따려고 지게를 지고 험한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강한 동료애와 연대의식이 형성됐고 아직도 살아 있는 공동체의식이 주민 화합을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9~10월에는 동상면 대아저수지 축조 100주년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댐인 대아저수지는 호남평야의 안정적 수원을 확보하려던 일제에 의해 1922년 만들어졌다. 이를 계기로 도로가 개설되면서 첩첩산중 동상면이 그나마 외부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서진순 동상면장은 “저수지가 생기면서 삶의 터전을 등지고 떠난 주민들도 있었다. 그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다가올 미래 100년 준비를 위해 주민 화합과 공동체의식을 다지기 위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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