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거저리(밀웜)로 만든 초콜릿. 전남도 제공
귀를 기울였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곤충잠업연구소(연구소) 사육실 안, 무 조각을 먹고 있는 쌍별귀뚜라미, 왕귀뚜라미가 계란판 사이를 고요하게 오간다. 심리치료에 효과가 있는 ‘귀뚜루루루, 귀뚜루루’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귀뚜라미는 봄에 울지 않는다.
자리를 옮겼다. 사육 상자 안에서 꿈틀대는 갈색거저리(밀웜)가 보였다. 원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서 등장할 법한 식용 곤충으로 도입된 종이다. 이제는 화장품 원료로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곤충이 됐다. 옆 사육 상자 톱밥을 들춰내니 흰점박이꽃무지와 굼벵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혈전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구소는 108년 역사를 갖고 있다. 뿌리는 일제가 1914년에 설립한 도립잠업강습소에 닿는다. 2000년대까지는 잠업시험장이나 잠종장이라는 이름대로 주로 누에치기 연구가 중심을 이뤘다. 잠업이 점점 쇠퇴하고 곤충의 산업적 쓰임새에 관심이 커지면서 2011년 1월 전남농업기술원 산하 곤충잠업연구소로 간판을 바꾸고 연구 대상도 곤충 전반으로 크게 넓혔다. 자치단체가 처음 만든 곤충연구소이기도 하다.
구희연 전남도 곤충잠업연구소 연구팀장이 식용으로 도입됐지만 최근에는 화장품 원료로 더 많이 쓰이는 갈색거저리(밀웜)의 생육 조건을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는 제사산업은 1980년대에 명맥이 사실상 끊겼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누에 가루를 건강보조식품으로 활용하는 곤충 가공산업이 주를 이뤘죠. 2000년대에 들어서는 곤충의 효능이 알려지며 식용, 미용, 가축 사료 등 연구 범위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구희연(59) 연구팀장의 말이다.
연구소가 꼽는 지난 10년의 최대 성과는 ‘귀뚜라미 소리 앱’이다. 2019년 왕귀뚜라미, 폭날개긴꼬리, 알락방울벌레, 방울벌레, 쌍별귀뚜라미, 모대가리귀뚜라미 등 귀뚜라미 6종의 소리를 담은 애플리케이션을 내놨다. 귀뚜라미 소리가 바람 소리, 파도 소리처럼 불면증과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진행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귀뚜라미 소리: 전라남도 농업기술원’ 앱에 들어가면 “아~ 넘 좋네요. 불면증 박살 내는군요”와 같은 감상평을 만날 수 있다.
연구소는 조만간 출시할 탈모 치료 제품에 기대를 한껏 갖고 있다. ‘수벌 번데기’에 있는 저분자 단백질이 두피 세포를 증식시키고 염증성 탈모를 억제하고 머리카락 굵기를 두텁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앞서 연구소는 건강기능식품의 원료가 되는 곤충연구도 여럿 진행했다. 그 성과로 갈색거저리는 구강 유산균 증식용 식품에 반려동물 충치 예방용 간식 재료로 쓰이고 있다. 흰점박이꽃무지 유충(굼벵이)이 심장과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는 건강기능식품의 재료로 쓰이게 된 것도 연구소의 힘이 컸다. 연구소는 2027년까지 43억원을 투입해 유망 곤충 발굴, 누에·뽕나무 기능성 양잠산업, 곤충 활용 가공제품 개발, 곤충 활용 치유제품 개발 등을 할 계획이다.
연구소가 연구 범위를 확대하고 상업적 성과에 속도를 내게 된 것은 정부 차원의 곤충산업 육성 전략이 수립된 영향이 있다.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곤충산업이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본 농림축산식품부는 2011년에 처음으로 ‘1차 곤충산업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지난해 3월 발표된
3차 계획(2021~2025년)은 곤충의 기능성 소재로의 활용과 생산의 규모화·자동화, 곤충 전문 유통체계 수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곤충산업 규모가 2019년 현재 900억원에서 2025년에는 1400억원으로, 고용 규모도 같은 기간 7천명에서 9천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전남 지역에 한정해 보면, 2020년 현재 177개 농가가 사슴벌레와 흰점박이꽃무지, 갈색거저리, 장수풍뎅이 등 곤충을 사육해 연간 4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구소는 최근 지구 온난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 8월 해남군 산이면 간척농지에서 수십억마리의 풀무치가 갑자기 나타나 수확을 앞둔 작물을 갉아먹어 피해를 준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농촌진흥청과 함께 원인 파악에 나선 연구소는 가물고 최고기온 30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비가 내리자 진흙 속에 있던 풀무치 알이 대량으로 깨어난 사실을 알게 됐다.
올해에는 꿀벌 집단폐사가 연구 과제로 떨어졌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꿀벌이 줄어들면서 농가 피해가 불어나고 있어서다. 올봄 전국적으로 사라진 꿀벌은 60억마리로 추정되며, 피해를 본 전남 지역 양봉 농가만 1360곳에 이른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2월 예년을 웃돈 따뜻한 기온 탓에 겨울잠에서 일찍 깨 활동을 시작한 꿀벌이 해 질 녘에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벌통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본다. 또 등검은말벌이나 기생충에 의한 피해와 2월에 진행한 밀원수(벌이 꿀을 따는 나무) 항공방제 등도 꿀벌 개체수 감소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꼽힌다. 전국 지자체 곤충연구소는 3년 계획으로 꿀벌 감소 원인을 파악기로 했다. 특히 전남 곤충잠업연구소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취약한 ‘꿀벌 질병’ 분석을 맡았다. 구 연구팀장은 “온난화가 지속되면 (곤충산업과 농가에)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전국 지자체 연구소와 연계해 관련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남 장성군 장성읍에 있는 곤충잠업연구소 전경.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수벌 등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원료로 만든 미백용 화장품. 전남도 제공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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