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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 128년만에 유골 확인된 ‘동학 접주’ 김응문 위령제

등록 2022-05-09 14:14수정 2022-05-09 19:09

무안군 ‘나주 김씨’ 일가 4명 현창비
“동학 지도자 유골 국내 발견 처음”
5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 입구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일가의 현창비를 후손이 살펴보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5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 입구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일가의 현창비를 후손이 살펴보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전남 무안에서 120여년 전 참수 당한 동학 지도자 응문 김창구(1849∼1894, 김응문)의 머리 유골이 최근 확인됐다. 국내에서 동학군 유골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후손들은 공식 위령제를 열어 선조의 한을 풀었다.

5일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에서 만난 후손 김성황(85) 전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은 “1990년대 이전까지는 역적 집안으로 몰릴 수 있어 증조할아버지의 동학 참여를 숨기는 분위기였다. 이제서야 선조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가리킨 곳에는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顯彰碑)’라고 쓰인 기념석이 놓여 있었다.

전날 무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무안 동학혁명유족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무안군 등은 김응문 일가가 살았던 차뫼마을 입구에 현창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냈다. 그동안 후손들이 제사는 지냈지만 자치단체,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위령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무안의 나주 김씨 장손이었던 김응문은 10칸이 넘는 집에 사는 등 풍족한 양반 생활을 하다 1894년 4월 둘째 동생 효문, 막냇동생 자문과 큰아들 여정을 이끌고 동학농민혁명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894년 일본군에 붙잡혀 참수당한 전남 무안의 동학혁명지도자 김응문의 머리 유골. 이장 과정에서 후손들이 발견했다.김성황씨 제공
1894년 일본군에 붙잡혀 참수당한 전남 무안의 동학혁명지도자 김응문의 머리 유골. 이장 과정에서 후손들이 발견했다.김성황씨 제공
김응문 일가는 무기 공급, 군자금 지원 등 무안 동학혁명을 주도했다. 같은 해 11월 나주 고막원 전투에 참여했다가 모두 일본군에 붙잡혔다. 12월8일 무안 관아에서 김응문과 자문, 여정은 참수당했고 나흘 뒤 효문도 뒤따랐다. 가계를 잇기 위해 직접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던 셋째 윤문도 이때 끌려가 고문을 받고 이듬해 11월 후유증으로 숨졌다. 드러내놓고 슬퍼할 수 없었던 유족들을 김응문과 자문의 머리 유골만 수습해 무안읍의 월구정이라는 산에 아기 묘를 몰래 만들어 안장했다. 또 효문은 무안 몽탄면 사천리, 여정은 무안읍에 묘를 만들었다.

후손들은 1996년 김응문과 부인 노씨를 합장하려 월구정 아기 묘를 파묘했다. 이 과정에서 옹기 항아리 안에 든 머리 유골을 발견했으나 다시 매장했다. 당시 매장문화재법은 유골이나 미라 등을 문화재에 포함하지 않은 터라, 발견된 육골도 연구는 커녕 화장이나 매장을 해야 했다.

후손들은 2019년 동학혁명 국가기념일이 제정되자 김응문의 추모사업을 추진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김응문 일가의 합동묘역 조성을 위해 올해 4월28일 개장하는 과정에서 김응문 유골의 존재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다. 개장에 참여했던 박석면 무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응문, 효문, 여정 등 세분의 묘를 먼저 개장했는데 모두 머리 유골만 확인됐다. 참수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과 영상을 전달받은 동학기념재단은 유골 상태와 기록 등을 근거로 유골들이 김응문 일가의 것이 맞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1995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에서 진도 동학군 유골이 발견돼 이듬해 봉환된 적은 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동학군 유골이 확인된 적은 없었다.

동학지도자 김응문의 후손 김성황씨가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회관 앞에 1996년 세워진 ‘동학혁명투사 현창비’를 설명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동학지도자 김응문의 후손 김성황씨가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차뫼마을회관 앞에 1996년 세워진 ‘동학혁명투사 현창비’를 설명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조사연구부장은 “일가족이 동학에 참가한 사례도 드물지만 참수당한 동학군의 유골이 온전한 형태로 확인된 적은 처음이다. 최근 매장문화재법 개정으로 인골 연구가 가능한 만큼 후손들이 동의해준다면 김응문 유골은 동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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