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 상흔> 책표지와 저자 최순호씨의 모습.
“어릴 때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마을 주민들의 희생자 이야기인데 기록이 너무 없어서 놀랐습니다. 후손으로서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래서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심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덕치리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보고서인 <가재 상흔>(남원미디어공방)을 최근 출간한 최순호(54)씨의 말이다. 그는 1991년 <조선일보> 사진기자로 입사해 25년 간 현장을 누비다 2016년 고향인 남원으로 귀향해 양봉 등을 하고 있다.
주천면발전협의회 총무를 맡은 그에게 지난해 11월 놀라운 일이 있었다.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 일대에서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세우기 위한 회의를 했는데, 자료가 너무 없었던 것이다. 그는 “70년이 넘었는데도 희생자에 대한 자료집도 없고, 주민들이 왜 희생을 당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선조들에 대한 염치없음과 무력감으로 자괴감을 느꼈다. 위령비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자료집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약 7개월 동안 집중했는데 알아가면 갈수록 자료의 깊이가 더해져서 자료집에 그치지 않고 책으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최순호씨가 1950년 11월20일 발생한 전북 남원 노치마을 민간인 희생사건 자료 조사를 위해 마을 어르신 증언을 듣고 있다.
<가재 상흔>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 기록 등을 담았다. ‘가재’는 노치마을의 순우리말이다. 갈대 노(蘆)와 고개 치(峙)로 갈대고개가 세월이 흐르면서 가재라는 이름이 됐다.
지리산 정령치를 따라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이 평화로운 마을에 1950년 11월20일 새벽 국군 제11사단 전차부대가 들이닥쳤다.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비무장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고촌·내기마을, 덕치리 노치·회덕마을, 운봉읍 주촌리 주촌마을 주민들을 노치마을로 몰아세웠다.
70년이 넘는 일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건의 배경을 알아야 했다. 1920~30년대 일제강점기 때부터 남원의 좌우익 계보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군 자료 등은 개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춘천 한림대, 국회도서관, 용산 국방부 군사편찬실 등을 찾아다녔다. 증언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도 만나 인터뷰했다. 책에 못 쓴 분들도 많단다.
“이책을 시발점으로 희생자들을 기록하는 작업이 더 활발했으면 합니다. 당시를 경험한 10살 안팎의 어린이들이 이제 80~90대가 돼 곧 돌아가시면 증언할 분들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의무감이기도 하고요. 그분들의 목소리와 표정 등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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