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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세습 예인 공간 ‘신청’ 복원해 나주소리의 맥 잇지요”

등록 2022-11-22 20:23수정 2022-11-23 10:25

[짬] 나주시립국악단 윤종호 예술감독

윤종호 나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나주신청문화관에서 ‘나주소리 판’을 시작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윤종호 나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나주신청문화관에서 ‘나주소리 판’을 시작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나주 구도심에 들어서니 복원된 읍성 성곽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조선시대 때 전라도의 도읍이었던 이 도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교동 서성문쪽 성곽길 옆으로 고느적한 한옥이 자리했다. 노거수 옆 고택 마루 기둥엔 나주신청문화관 나무 팻말이 걸려 있다. 신청(神廳)은 세습무계 단골 집안의 남성 예술인들이 조직한 단체이자, 지역 예술 전수의 거점 공간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공연예술인조합’이나 ‘예술인협회’ 쯤인데, 조선 시대엔 공적 기능까지 맡고 있었다.

나주시립국악단은 2020년 5월 개관한 신청문화관을 활용해 다양한 공연·체험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흥겨운 나주소리판’이 펼쳐진 신청문화관에서 윤종호(52) 나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을 만났다.

나주 출신인 그는 2016년부터 예술감독을 맡아 ‘찾아가는 판소리 공연’으로 인기를 끌었고, 해마다 5~10월 매주 토요일 나주 금성관에서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리 따라 부르기 같은 대중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조선시대 세습 단골 남성들 단체 ‘신청’
1929년 신문 기사 통해 옛 주소 확인
나주신청 예인 다섯집안 기록도 찾아
2020년 새로 개관해 다양한 프로그램

정남희 등 나주 출신 월북 음악인 발굴
“삼현육각 등 남도 소리문화 널리 홍보”

지난 19일 나주신청문화관에서 열린 학술 발표회에서 이경엽 목포대 교수가 `재인청의 역사와 나주신청의 예인들'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 19일 나주신청문화관에서 열린 학술 발표회에서 이경엽 목포대 교수가 `재인청의 역사와 나주신청의 예인들'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1931년께 나주신청 예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나주신청문화관 제공
1931년께 나주신청 예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나주신청문화관 제공
조선시대 ‘나주신청 선생안’에 나오는 예인들의 이름. 이경엽 교수는 보성소리의 근원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소개했다. 윤종호 감독 제공
조선시대 ‘나주신청 선생안’에 나오는 예인들의 이름. 이경엽 교수는 보성소리의 근원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소개했다. 윤종호 감독 제공
윤 감독은 7년 전께부터 나주 신청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향토사학자 윤여정 나주시문화원 부원장이 <동아일보>(1929년 12월22일치)에 실린 ‘나주 신청 화재’ 기사를 찾아 나주 신청의 위치가 ‘전남 라주 본정 이십구번지 박판석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게 큰 계기가 되었다. 1931년께 나주신청 예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찾아냈다. 윤 감독은 “나주소리의 역사를 소홀히 여겼는데 신청의 존재를 알고 깜짝 놀랐다”며 “나주소리 뿌리를 찾는 데 윤 부원장님이 한문도 번역해 주시는 등 많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이날 첫 행사는 나주신청에 대한 학술 발표회였다. 국문학자인 이경엽 목포대 교수가 ‘재인청의 역사와 나주신청의 예인들’ 주제 발표를 통해 나주신청의 각별한 문화사적 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이 교수는 “나주신청 예인 다섯 집안이 기록된 자료엔 정원길(1834~1903), 정원실(1838~?), 정재근(1854~1914), 정응민(1896~1963), 정권진(1927~86) 등의 이름이 나온다”고 말했다. ‘어전광대’였던 정재근은 정원길의 아들로, 판소리 서편제를 널리 보급한 인물이다. 이 교수는 “정재근의 소리는 조카 정응민을 거쳐 ‘보성소리’로 확장됐고, 아들 정권진과 손자 정회석으로 이어지는 명가를 이뤘다. 보성소리의 뿌리가 나주신청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기록에 나오는 나주신청 다섯 집안은 정원길을 비롯해 박영만, 김기환, 박향열, 박제목 등이다. 이 교수는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 귀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나주신청 예인들의 이름이 적힌 이 자료는 보성소리 가문 종손 정회천 전북대 교수(한국음악학과·판소리 고법 무형문화재 59호 전승교육사)가 보관하고 있었다. 윤 감독은 “2019년 1월 나주 전통음악사를 개괄하는 학술대회를 앞두고, 정 교수님께 자료를 요청했다. 그런데 선뜻 ‘이것도 소리의 역사’라며 정응민 선생이 기록해 보관하던 자료를 내주셨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최연소 판소리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윤진철(왼쪽) 명창이 윤종호(오른쪽) 예술감독의 북 장단에 맞춰 <적벽가> 한 대목을 부르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 19일 최연소 판소리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윤진철(왼쪽) 명창이 윤종호(오른쪽) 예술감독의 북 장단에 맞춰 <적벽가> 한 대목을 부르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 19일 이지영 서울대 교수가 나주 출신 정남희의 가야금 산조 곡을 복원해 연주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 19일 이지영 서울대 교수가 나주 출신 정남희의 가야금 산조 곡을 복원해 연주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그는 안기옥·정남희 등 나주 출신 월북 음악인들의 자료도 모으고 있다. “옛 나주 삼도(현 광주·광산) 출신 명창 김창환·김봉이 부자의 소리 음원을 어렵사리 구해 채보중이며, 내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에 이어 열린 소리판에서도 나주 출신 월북 음악인 정남희의 가야금 산조곡이 연주됐다. 정남희의 원산권번 시절 제자였던 이말량(1908~2001) 선생을 사사한 이지영 서울대 교수(국악과)는 “예맥으로 보면 할아버지인 정남희 선생님의 곡을 고향에서 연주하는 게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최연소 판소리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윤진철 명창이 보성소리 <적벽가> 중 한 대목을 선보였고, 중간중간 재담으로 판을 휘어잡았다.

윤 감독은 소리꾼이다. 10대 후반 우연히 소리를 접하고 매력을 느꼈던 그는 서편제 <심청가>를 처음 배웠다. 전남대 국악과 2학년 무렵부터 윤진철 명창한테 <심청가>와 <적벽가>를 사사했고,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판소리 명창부(2014)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등 보성소리의 맥을 잇고 있다.

공연 기획력도 뛰어난 그는 나주 고유의 삼현육각 음악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두개의 피리·대금·해금·장구·북 등 여섯개 악기가 빚어내는 나주 삼현육각은 조선시대부터 예술성이 뛰어났지만, 예능보유자였던 고 임동선 선생이 1987년 별세한 뒤 한 때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윤 감독은 “나주 삼현육각 악곡 전체를 모두 복원해 무대에 올렸다”며 “남도 소리문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 공연을 자주 열어, 지역 전통 음악사를 복원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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