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광주지법 앞에서 전두환의 사자 명예훼손 재판에 나온 전 5·18유족회장이 헬기사격을 입증할 군관련 자료들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21일 오후 전남도청 뒤쪽을 선회하던 헬기에서 ‘땅땅땅’ ‘땅땅땅’ 수차례 사격하는 소리를 들었다.”
10일 전두환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정수만(73) 전 5·18유족회장은 법정에서 당시를 이렇게 증언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는 이날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의 재판에서 정씨 등 6명의 헬기사격 증언을 들었다.
정씨는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가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를 한 뒤 대치가 소강에 이르자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겪은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애초 금남로 쪽이 아니라 서석로 전남매일 쪽에 있다가 도청 뒷길을 돌아 집으로 가다 주검 1구를 봤다. 이곳에서 50m쯤 떨어진 서석동 김OO병원 근처에 이르렀을 때 공중에서 ‘땅땅땅’ 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헬기가 공중에서 돌고 있었다. 재빨리 병원 담장 나무 아래로 숨었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이후 기록을 확인했더니 5월21일 오후 2시 이곳에서 발견된 주검은 홍인표(당시 19살)씨였다. 정씨는 “사인은 타박상에 의한 ‘좌측 전두골 함몰 복잡골절’로 나와 있었다. 부근에 계엄군이 없었던 정황으로 미뤄 헬기사격에 따른 사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30년 넘게 수집한 자료 가운데 △당시 계엄사령부의 헬기사격 명령 기록 △5월27일 새벽 5시10분 ‘전과 폭도사살 2명’이라고 적은 1항공여단 상황일지 △실탄 1500발을 항공대에 재보급한 전투병과교육사령부 보급자료 등을 헬기사격 근거로 제출했다.
피고쪽 정주교 변호사는 “1995년 서울지검 수사와 2016년 국방부 조사 때 헬기사격을 왜 말하지 않았나. 도청에서 동명동 집까지 500여m 정도인데 목격 장소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고 물었다. 정씨는 “수사 조사 때 쟁점이었던 암매장 부분에 주로 질문을 받아 진술할 기회가 없었다. 도청을 공수부대가 장악한 상황이어서 먼거리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광주기독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최윤춘(56·여)씨도 “날짜와 시간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시 병원 밖 상공에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응급실에서 나가보니 낮게 날던 헬기 한 대가 늘어선 헌혈행렬 후미를 향해 ‘다다다다다’하며 총을 쐈다. 마른 땅에서 총탄이 튀었고, 부상자가 여럿 생겼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가 “왜 이제 말하나”라고 묻자, 최씨는 “이전에 했으면 잡아갔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지난 3월11일 재판에 출석했던 전씨는 이날 재판부 허가를 받고 출석하지 않았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판한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재판을 받고 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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