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충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광주지역 일반노조 클린광산지회장이 13일 광산구청 광장에서 “협동조합 강제 해산 중단”을 요구하며 사흘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클린광산 제공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일하는 맛을 느끼는 것이지요.”
노동자들이 만든 첫 협동조합으로 출발한 클린광산사회적협동조합(이하 클린광산)의 조합원 한충문(43)씨는 13일 연봉이 느는데도 광산구시설관리공단 환경미화원으로 직접 고용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깨끗하게 쓰레기를 치우려고 하고, 주민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하고 마을에 방역 등 봉사도 나간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광주지역 일반노조 클린광산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광산구청 앞에서 “협동조합 강제 해산 중단”을 요구하며 사흘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클린광산은 광산구 월곡1·2동과 하남2지구 1만7093 가구가 배출하는 음식물·생활쓰레기·재활용품 등 폐기물을 수거해 운반하는 업무를 한다. 클린광산은 2013년 1월 구 위탁업체가 폐업하면서 실직을 앞둔 청소노동자 18명이 만든 전국 최초의 협동조합으로 출발했다. 민형배 전 광산구청장은 노동자들이 만든 협동조합과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 계약을 해 일거리를 주는 방식으로 해고와 실직을 막아 전국적인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런데 광산구는 지난 달 24일 클린광산과의 계약이 6월30일로 만료된다는 것을 통보했다. 구는 지난 해 광주시 종합감사에서 클린광산 수의계약 건이 부적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구는 클린광산과 맺은 계약 금액이 지난 해 14억 4천만원이어서 더 이상 수의계약을 통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광산구 관계자는 “지방계약법(제25조)의 수의계약 대상은 협동조합의 경우 물품·용역 금액이 5천만원 이하일 때만 가능하다. 환경부는 2017년 3월 폐기물 처리업체에게 계약 연장 등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지방계약법 위법 소지가 있다고 17곳 시·도에 통보했고, 이는 공개입찰을 통해 폐기물 업체를 선정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클린광산 쪽은 “행정안전부 검토 의견을 보면, 지방계약법(제4조)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즉 폐기물 관리법에 의해 수의계약의 세부 근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수의계약이 적법한 계약이다. 법령에 의해 감사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지적했다. 클린광산이 맡아왔던 월곡1·2동과 하남2지구에서 나오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독점권을 달라는 게 아니라 해당 업무에 대해 향후 공개입찰하면 응하겠다는 것이다. 클린광산은 2015년 7월 광산구시설관리공단이 출범한 뒤에도 통합되지 않았다.
전국 첫 노동자 사회적협동조합 클린광산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을 구 시설관리공단으로 통합하려는 구 방침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클린광산 제공
하지만 광산구는 클린광산과 대행계약 종료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구 시설관리공단은 6~17일 클린광산 노동자들에 한해 제한경쟁 방식으로 청소원 모집공고를 냈다. 클린광산에서 광산구시설관리공단으로 고용돼 청소노동자로 일할 경우 700만~800만원의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광산구 쪽은 “그동안 사회적 경제영역에서 헌신해 온 점을 존중하고, 근로자의 보호를 최우선에 둔 정책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광산구는 클린광산에 음식물·생활쓰레기 업무는 구 시설관리공단으로 통합하고, 나머지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일을 시범적으로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 상태다. 광산구 쪽은 “행안부의 검토 의견은 공식적인 문건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클린광산 대다수 조합원들은 구 시설관리공단의 직접 고용에 반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행정기관 위탁업체 노동자들이 업체 계약 해지 때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임동현(60) 클린광산 이사장은 “조합원들이 회의를 통해 조합의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임금을 더 받는 것보다 내가 하는 일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2013년 협동조합 출범 때 300만원씩을 출자했고, 이사장도 투표를 통해 임기제로 뽑는다.
한 사회적경제 전문가는 “클린광산은 실험적인 협동조합의 전국적 모델이다. 협동조합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려면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책적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지방정부가 과감하게 협동조합 관련 정책을 실험해야 중앙정부의 정책도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삼호 광산구청장은 “폐기물 수집·운반 구역 일부를 협동조합과 수의계약하는 방식은 2013년 당시에는 불가피했지만 지금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