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의 서예가 호산 박인규 선생이 지난 24일 생 첫 전시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강진아트홀 제공
“100살까지 정진할라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니께.”
지난 22~24일 전남 강진아트홀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연 박인규(94·사진) 선생은 완성을 향한 열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날마다 새벽 4시부터 서너 시간씩 써온 한시와 휘호 등 작품 50여점을 걸었다. 그는 “심심풀이로 쓴 글씨여서 부끄러운데 가족의 권유를 끝까지 내치지 못하고 내놓게 되었다”고 쑥스러워했다. 이어 “나보다 잘 쓰는 이는 많지만 내 나이에 쓰는 이는 드물다. 100살까지 천착해 제대로 쓴 글씨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작 중 영월군수 낙촌 박충원의 ‘단종제문’에 애착을 나타냈다. 이 제문은 한학자 박충원이 군수 부임 직후 단종의 무덤을 찾아 이장하며 지은 글로 <선조수정실록>에 올라 있다. 밀양박씨 규정공파인 그는 선조의 용기 있고 인간적인 행동을 귀감으로 삼으려 이를 자주 써서, 종중에 나눠줬다.
교사로 퇴직한 그는 인생 2모작 과정에서 한문과 시조 등 전통문화에 빠졌다. 틈틈이 익힌 솜씨로 강진국악경연에서 대상을 받고, 한문 2급 자격증을 땄다. 90살부터는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서예는 긴장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어릴 때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웠다. 한자를 쓰는 게 참 좋았다. 어느 날 일본인 교장이 칼을 차고 들이닥치면서 서당이 없어졌다. 하고 싶은 걸 못했던 기억 때문에 다시 배웠을 때 더 열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그는 “오체(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를 다 잘 쓰려면 당(아직) 멀었다’고 겸손해했지만 기량은 날로 늘었다. 목민심서서예대전, 한석봉서화전람회. 나라사랑미술대전 등에서 잇따라 입상했고, 올해 한석봉서예대전 3체상, 국제기로미술대전 5체상을 차례로 받았다.
‘아버지 인륜을 쓰고, 아들 자연을 찍다’ 제목으로 열린 박인규-박경만 부자 전시회. 강진아트홀 제공
그는 1926년 장흥에서 태어나 10살 때 가족을 따라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이주해 하얼빈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스무살 때 해방을 맞아 강진으로 돌아왔고, 1947~90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퇴직한 뒤 자택에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복지회관에서 장애인을 지도하는 등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병인생 교우 10명 중에 나만 남았다.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강진에서 친지와 동무의 각별한 배려를 받고 살아 여태 건강했다. 아직 맨눈으로 신문을 읽을 만큼 시력이 좋아 서예를 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서예 글씨와 사진이 나란히 걸린 ‘박인규-박경만 부자 전시회’. 사진 강진아트홀
그의 전시에 강진만의 해돋이와 해넘이 등 사진 25점을 보태 ‘부자 전시회’를 연 아들 경만(57)씨는 “건강 비결은 매사에 욕심이 없으시고 부지런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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