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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안 된 ‘녹두장군 전봉준’ 생가, 결국 철거

등록 2019-07-23 14:11수정 2019-07-23 21:15

고창군, 2001년 5칸 가옥으로 복원
당시 농민들 살던 초가삼간과 달라
고창군에 위치한 전봉준 장군 생가터. 고창군 제공
고창군에 위치한 전봉준 장군 생가터. 고창군 제공
전북 고창에 위치한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군 장군의 생가가 철거된다.

고창군은 제대로 복원을 하지 못한 전봉준 장군 생가를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철거를 위한 예산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앞서 고창군은 2001년 고창읍 죽림리 63번지(당촌마을)에 예산 1억여원을 들여 전봉준 장군 생가를 복원했다. 생가터는 안채 1동과 헛간 1동 등 모두 2동으로 이뤄졌다. 안채는 정면 5칸이며, 지붕은 초가 형태로 지어졌다. 전봉준 장군은 1855년 12월3일 이곳 당촌마을에서 태어나 13살 무렵까지 살았다. 생가는 당시에 서당, 안채, 사랑채 등이 있었으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기간에 모두 소실됐다.

그러나 군이 제대로 된 고증 없이 생가를 복원했다가 철거하게 됨으로써 역사적 인물의 생가 복원의 실패 사례를 남기게 됐다. 복원된 생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규모다. 당시 농민들은 보통 `초가삼간’(세칸 풀집)이라고 부르는 3칸짜리 초가에서 살았다. 그러나 복원된 생가는 5칸짜리 건물이다. 5칸짜리 집은 통상 농민이 아니라 중인 이상이 살던 가옥 형태다.

고창군에 위치한 전봉준 장군 생가터. 고창군 제공
고창군에 위치한 전봉준 장군 생가터. 고창군 제공
문병학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념사업부장은 “19세기 당시 농민들은 정면이 3칸이고 처마와 지붕이 낮은 작은 초가삼간에서 살았다. 지금의 전봉준 생가는 중인이나 지주가 살았던 5칸짜리 가옥이고, 1920년대 가옥 양식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 부장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생가는 철거하고 다시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제대로 복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생가터만 남겨 사적으로 지정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고창군 관계자는 “2년 전인 2017년 생가의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으나 복원에 잘못된 부분이 많아 부결됐다. 생가를 철거해 없앨지, 다른 곳으로 옮길지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생가터를 새로 정비해 문화재 등록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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