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노역으로 공분을 샀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으로 공분을 샀던 허재호(77) 전 대주그룹 회장이 조세포탈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한겨레> 보도를 통해 검찰이 허 전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치 처분을 내려 사실상 수사를 중단했다는 사실(<한겨레> 2018년 10월1일치 13면)이 알려지자, 재수사 끝에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전 회장의 차명 주식 매각 대금이 제 3자에게 유입된 정황에 대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지검은 차명 주식을 판 뒤 발생한 수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조세포탈)로 허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허 전 회장은 2007년 5월~11월께 지인 3명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25억원 상당의 대한화재해상보험㈜ 주식 36만9050주를 판 뒤 발생한 양도소득세 5억136만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하면서 배당된 소득 5800만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650만원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 전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는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 보통 조세 포탈액이 5억원을 넘으면 공소시효가 10년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혐의를 적용한다. 광주지검 쪽은 “허 전 회장이 2015년 8월 3일 검찰의 참고인 중지 처분 이후 뉴질랜드로 출국할 때 범행을 도피할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말했다.
검찰이 뒤늦게 허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지만 차명주식 매도 자금의 행방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허 전 회장은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차명주식 처분 대금 사용자는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도 2014년 수사 당시 차명주식 처분 일부 대금이 사실혼 관계였던 ㅎ씨가 운영하는 업체의 계좌로 유입됐다는 정황을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에서 허 전 회장은 ㅎ씨가 차명 주식을 처분해 자금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ㅎ씨는 허 전 회장의 허락을 받고 차명 주식 매각 대금을 자녀 결혼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허 전 회장을 조세포탈혐의로 기소했지만 소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뉴질랜드는 2002년 범죄인 인도 협약을 체결했지만 뉴질랜드 시민권자인 허 전 회장이 자진 귀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광주지검 쪽은 “허 전 회장을 일단 기소한 뒤 변호인이나 친척 등을 통해 귀국을 종용할 방침이다. 만약 자진 귀국하지 않으면 재판 불출석으로 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 소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제노역으로 공분을 샀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뉴질랜드 한 카지노에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그간 검찰은 무려 5년 남짓 허 전 회장의 조세포탈 사건을 봐주기 수사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7월21일 황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려 사실상 허 전 회장이 뉴질랜드로 출국할 수 있도록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허 전 회장은 2010년 1월 400억원대의 세금과 벌금을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출국해 살면서 2014년 2월 카지노에서 도박한 사실이 드러나자 2014년 3월 중순 귀국해 벌금을 낼 돈이 없다며 하루 5억원씩을 탕감받는 구치소 노역을 했다가 공분을 샀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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