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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처음 미국에 알린 빌링스 선교사 별세

등록 2019-08-01 18:49수정 2019-08-01 22:02

워싱턴 ‘북미한국인권연맹’ 대표로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 기여
‘광주진압’ 이틀뒤 희생자 추모예배
2011년 4월 한국에 온 페기 빌링스 전 태화사회복지관장. 연합뉴스
2011년 4월 한국에 온 페기 빌링스 전 태화사회복지관장. 연합뉴스

미국에서 1980년 5·18항쟁 희생자 추모 예배를 열었던 미 인권단체 북미한국인권연맹의 페기 빌링스(한국 이름 변영숙) 선교사의 장례 예배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뉴욕의 에피파니 교회에서 열렸다. 빌링스는 지난달 19일 별세했다. 향년 90.

고인이 이끌었던 북미한국인권연맹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진압작전 종료 이틀 뒤인 29일(미국시각) 뉴욕 맨해튼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 예배를 열었다. 고인은 감리교 선교부 총무로 1975년 11월 결성된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위원회’ 총책임자였다. 5·18기념재단은 “당시 추모 예배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5·18의 진상을 알리는 첫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빌링스는 1999년까지 북미한국인권연맹을 이끌며 한국 민주화 지지 여론을 끌어내 미국 정부를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고 미 감리교 선교부 예산으로 한국 단체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와 북미한국인권연맹 활동가들은 1981년 4월 미국으로 밀항했던 5·18 마지막 수배자 고 윤한봉 선생의 도피 생활과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1954~63년 서울 태화복지관장 시절의 페기 빌링스 선교사.
1954~63년 서울 태화복지관장 시절의 페기 빌링스 선교사.
빌링스는 미국 스카릿대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1953년 한국에 와 서울 태화복지관장(1954~1963년)을 맡아 빈민층을 위한 야학과 여성들의 직업상담도 열었다. 북미한국인권연맹이 1978년 한국의 인권단체와 공동 작성한 한국인권 상황 보고서는 당시 카터 행정부의 한국 인권정책 수립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빌링스 선교사는 감리교인이었던 이희호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교류하면서 한국의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

5·18기념재단은 1일 “5·18 당시 광주는 국내적으로 고립되었으나 빌링스 선교사와 많은 활동가들의 헌신 덕택에 연대의 끈을 이을 수 있었다. 한국 5·18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에 헌신하신 페기 빌링스 선교사의 영면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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