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수묵을 치다보면 풍경 속에 녹아든 위인의 향기가 느껴지지요.”
중견화가 정태관(59·목포문화연대 대표)씨가 3~8일 목포시 오거리문화센터에서 화첩기행전 ‘남도 유배 섬을 가다’를 연다. 정씨는 섬의날(8월8일)을 맞아 섬 개발에만 관심이 집중되자 인문학적 섬 안내서를 내는 심정으로 전시를 구상했다. 전시에는 길이 10m, 너비 30㎝짜리 화첩 9권에 틈틈이 그렸던 ‘흑산도 최익현 유허비’, ‘신지도 지석영 적거지’ 등 유배 섬 수묵기록화 157점을 내건다. “어민들과 교류하며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1758~1816)이 최후를 마쳤던 우이도나 강화도조약을 결사반대한 최익현(1833~1906)이 도끼 상소를 올렸다 쫓겨간 흑산도의 풍경에는 저릿한 아픔이 배어있다.”
그는 조선 후기 560명이 유배됐던 남도 섬의 풍경과 역사를 두루 기록했다. 유배의 흔적이 남은 공간을 선택해 수묵을 쳤고, 장소의 유래와 작가의 감정을 화제로 표현했다. 특히 구한말 위정척사운동의 중심이자 항일의병장으로 출병했던 최익현이 유배됐던 흑산도 기록화는 현재 상황과 맞물려 처연함을 전해준다. 한 마을에 20여명이 한꺼번에 위리안치됐던 신지도, 윤선도가 어촌의 생활을 <어부사시사>로 노래했던 보길도 등은 사진마냥 구체적이다.
“현장에서 그려야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절해고도에 등 떠밀린 유배인들의 심정을 담으려 애썼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땀을 흘리며 붓질을 하노라면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남해안 곳곳의 유인도와 무인도, 항포구를 답사하고 있다. 뱃시간에 쫓겨 서둘러 그린 현장 그림들로 화첩 30권을 빼곡히 채웠을 정도다.
“조선의 섬은 공도와 해금이 반복된 변방이었다. 위축되고 소외됐던 유배섬들을 다니면서 비로소 역사를 제대로 배우게 됐다. 윤선도, 정약전, 조희룡, 최익현, 지석영 등 유배인의 생애와 고민이 격변하는 역사의 흐름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시화에는 섬과 바다가 많이 나온다. 갈래가 워낙 다양해서 누구도 일목요연하게 연구하고 정리하지 못했다. 지역민과 유배인이 함께 꽃피운 남도 섬의 독특한 유배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앞으로도 섬들을 부지런히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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