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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장마 겹쳐 수심 가득한 나주 들판의 농심

등록 2019-09-09 16:16수정 2019-09-09 20:23

호남 곡창 나주 봉황면 농가 1500가구 중 500~600가구 피해
“등숙기에 날벼락 맞아 착잡…피해조사 추석 전에 서둘렀으면”
9일 전남 나주시 봉황면 신동리 탑동마을 농민 오정자씨가 수북하게 떨어진 배들을 보여 근심에 잠겨 있다.
9일 전남 나주시 봉황면 신동리 탑동마을 농민 오정자씨가 수북하게 떨어진 배들을 보여 근심에 잠겨 있다.
“너무 많이 빠져서 믿고 싶들 안 허요.”

9일 오후 1시 전남 나주시 봉황면 신동리 탑동마을에서 만난 농민 오정자(58·여)씨의 얼굴은 수심이 깊었다. 태풍이 할퀴고 지난 뒤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이었다. 폭풍이 잦아들길 기다려 꼭두새벽 8000㎡의 과수원을 살피러 갔다. 나무 밑으로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는 배들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70%는 떨어져 버렸다. 성숙시킨 뒤 출하하려다 날벼락을 맞았다. 배 피해가 하도 심해 벼가 있는 논에는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

그는 낙과를 쪼으려 날아든 까치를 큰소리로 쫓으며 한숨 지었다. 그는 “원예농협에서 조사를 나온다고 해서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으려니 더 속이 상한다”고 했다. 이웃인 김일순(75·여)씨도 “이렇게 센 바람은 난생 처음이다. 가까스로 붙어 있는 배들도 멍들거나 변색해서 팔지 못할까 걱정스럽다“고 거들었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한숨도 깊었다. 곡창지대 나주평야의 벼논 상당 면적이 강풍을 맞아 한쪽으로 쓰려졌지만 복구는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논바닥에 쓰러진 벼들을 세워 묶으려면 적잖은 인건비를 들여야 하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줄기가 부러져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농민 김순남(70·봉황면 운곡리)씨는 “하필 알곡이 여물어 갈 때 태풍을 맞았다. 한 달 뒤에 수확인데 물속에 잠기면 나락에서 싹이 나 농사를 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태 링링의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전남 나주시 봉황면 들판의 벼논
태 링링의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전남 나주시 봉황면 들판의 벼논
태풍 링링이 강타한 뒤 장마가 이어지면서 농촌에선 추가 피해와 복구 지연을 우려하고 있다. 바람 피해가 심한 전남에는 30∼8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불안한 농민들은 이날 비 탓에 들판에 나가지 못하고 행정기관을 찾아 수습책을 상의했다. 나주 봉황면사무소에는 농민 300여명이 방문해 어두운 표정으로 피해신고서를 작성했다. 면사무소는 면내 1500농가 중 500~600가구가 벼가 쓰러지거나 배가 떨어지는 등 피해를 봤다고 추산했다. 지자체는 봉황면에서 최소 벼농사는 40~50%, 배농사는 30~40%가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봉황면 관계자는 “신고를 받아 추석이 오기 전에 복구하고 싶지만 워낙 피해규모가 커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남도의 피해면적은 9일 현재, 도복(작물이 비나 바람 따위에 쓰러지는 일) 4842㏊, 낙과 1230㏊로 집계됐다. 태풍이 주말에 덮쳐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 피해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초속 54.4m의 강풍이 몰아친 신안 흑산도와 완도 보길도 등에선 양식장 피해도 잇따랐다. 신안군 흑산면 장도리에선 전복과 우럭 양식장 360칸이 부서졌다. 전남도는 17일까지 피해조사를 마치고 긴급 복구에 나서기로 했다.

나주/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9일 전남 나주시 봉면사무소 태풍피해 접수처에 농민들이 몰려들어 신고서를 쓰고 있다.
9일 전남 나주시 봉면사무소 태풍피해 접수처에 농민들이 몰려들어 신고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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