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 숲을 지키기 위한 시민모임’ 회원인 김키미씨가 6일 광주 영산강유역환경청 앞에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광주 영산강유역환경청 정문 앞에 천막 2개가 펼쳐진 지 7일로 23일째다. 훼손되고 있는 제주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노숙투쟁에 나선 제주 주민 김키미(40)씨가 친 천막이다. 김씨는 “비자림로는 제주 막개발을 저지하는 상징적 공간이 됐다”며 “비자림로 확장공사로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농성장 주변엔 ‘비자림 숲을 지켜요’ ‘제주 비자림로 파괴한 거짓·부실 환경영향평가 철회하라’고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비자림로 확장구간은 제주 주민들의 반대가 거센 제2공항 예정지 연계도로 ‘금백조로’의 시작점이다.
영산강유역환경청 정문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제주 주민 김키미씨의 농성 ‘그림일기’. 정대하 기자
‘비자림로 숲을 지키기 위한 시민모임’ 회원인 김씨가 제주에서 광주로 건너와 영산강유역환경청 앞에 천막 2개를 친 것은 지난달 16일이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광주·전남뿐만 아니라 제주 지역의 환경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김씨는 두 발을 뻗기 힘든 작은 공간에서 노숙하며 천막을 지키고 있다. 제주 주민들이 교대로 찾아오고, 광주 지역 시민단체 30여곳의 회원들이 ‘연대 노숙’을 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3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제2대천교 인근 숲에서 비자림로 개설 공사가 다시 시작됐다가 주민 반발로 5월 일시 중단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비자림로 공사 중단 투쟁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됐다. 제주도는 구좌읍 평대리를 지나는 1112번 지방도로 2.94㎞ 구간을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30~50년 된 삼나무 900여그루를 베었다. 시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확장공사는 지난 5월 일시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가 2015년 3월 의뢰업체에서 받은 ‘비자림로 도로 건설 공사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에 “비자림로 숲이 생태적 보존가치가 높지 않고 보호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없다”는 허위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광주 영산강유역환경청 비자림로 숲을 지키기 위한 농성장에 천막 2개 설치돼 있다. 오른쪽 천막은 광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노숙농성에 연대하며 머무는 공간이다. 정대하 기자
이에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 7월 제주도에 ‘소규모환경영향평가 이행조치 계획 결과 보고서’(이행 결과 보고서)를 제출받은 뒤, 지난달 19일 이를 보완하라고 반려했다. 또한 조만간 제주에서 두번째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를 열 방침이다. 영산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시민모임과 제주도 등 당사자들의 합의 과정을 거친 뒤 확장공사 재개 여부와 관련한 ‘검토 의견’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쪽은 “환경영향 저감 대책을 보완한 뒤 확장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노숙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김씨는 “비자림과 제주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고 나섰다”며 “제주도가 비자림로 숲의 가치를 은폐해 막개발해서는 안 된다. 생태·환경 보존을 가로막는 커다란 벽이 돼버린 환경영향평가제도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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