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항쟁 당시 시민군의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의 2007년 겨울 풍경. 김향득 사진가 제공
4·19혁명 60돌과 5·18항쟁 40돌을 맞는 의미있는 해를 맞아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이 국가의 공식의례나 당사자 중심으로 진행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와 눈길을 모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는 올해 첫번째 민주화운동(KDF) 리포트 ‘민주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 4·19혁명 60주년, 5·18항쟁 40주년을 맞아’를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민주화 운동사의 중요 사건을 당사자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기념일로 계승하기 위한 방안이 담겨 있다.
이번 리포트의 저자인 김동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장(성공회대 교수)은 “4·19혁명이나 5·18항쟁은 후대의 구성원이 반드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며, 그에 합당한 사회적 인정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이 참가 당사자만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고 기억, 기념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5·18 항쟁은 광주와 호남이라는 매우 강력한 정치적 주체가 있으니 막대한 예산이 책정되어 기념행사, 각종 공연, 문화행사 등이 예년보다 더 크게 전개될 것”이라며 “그런데 그런 행사로 인해 국민들이 정말로 5·18 항쟁의 기억을 더 강하게 새기게 될까? 온 국민이 광주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민주화의 공로에 공감하는 그러한 행사가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5·18항쟁의 현주소의 한 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김 교수는 옛 전남도청 복원 문제를 들었다. 그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건립되면서 원형이 훼손됐다며 시민군의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 복원을 주장하는 5·18단체와 시민사회 인사들 사이의 괴리감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5·18 항쟁 희생자들은 도청의 현장 보존만이 5·18항쟁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 주장하지만, 대다수 지역 시민사회 인사들은 그러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들 5·18 항쟁 당사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누구도 감히 반격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사업은 계속 파행을 겪어 왔다.” 5·18 당사자들과 시민사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정부분 왜소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저수지 역할을 했던 4·19가 처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 교수는 “4·19 혁명은 시민의 힘으로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켰다는 큰 역사적 대의 속에서만 빛이 난다”며 “그런데 ‘우리 지역’의 ‘내가 참가한 사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면, 그러한 분열을 보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억, 기념사업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4·19혁명의 기억의 변질과 후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4·19희생자유족회가 보훈처가 관리하는 준관변단체로 전락한 사실”을 꼬집었다.
한국의 대표적 민주화 운동인 4·19 혁명, 5·18 항쟁은 “현재의 민주주의의 과제와의 접점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특히 “4·19혁명은 개개인이 유공자 인정을 받기 위한 그들만의 기억, 정부의 보훈 사업의 일환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4·19와 5·18 등 민주화운동이 기득권의 상징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만약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의 모임이 과거의 상이군경회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면, 청년과 일반대중들은 더욱 무관심하게 될 것”이라며 “4·19혁명 60돌과 5·18항쟁 40돌을 맞아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인지 먼저 공론화한 뒤 기념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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