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수산고의 444t급 실습선 청해진호 막내 선원 이찬호씨
“항해가 딱 적성에 맞았어요. 좋아하니까, 관심가니까 더 열심히 했어요.”
전남 완도수산고 소속 444t급 실습선인 청해진호의 막내 선원 이찬호(18)씨는 22일 한창 선미 창고의 로프를 정리 중이었다. 지난 3월 첫 발령을 받은 그는 길이 54.3m, 너비 9.2m, 정원 61명인 이 배의 구석구석을 익히느라 하루해가 짧다. 그는 “어렸을 적 꿈을 이뤘다. 모교 실습선을 타게 되니 애착이 크고 책임도 무겁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태우고 빨리 실습을 가야 하는데 답답해요. 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미뤄져 3월 제주 가는 일정은 무산됐고, 5월 출항날짜도 못 잡고 있어요. 정박 중에도 이곳저곳 도색하고 수리하랴 손길이 많이 가서 눈코 뜰 새 없어요.”
그는 완도수산고 어선운항관리과 3학년이던 지난해 6월 마이스터고 출신 기술직공무원 공채를 치렀다. 필기 3과목 중 배우지 않은 물리를 새롭게 공부하느라 애를 먹었다. 분투한 끝에 한 달 만에 고대하던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엄마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서울 출신인 그는 당산초와 선유중을 나왔다. 진로를 고민할 무렵 여수에서 뱃길로 두 시간 걸리는 외가댁 소리도의 푸른 바다가 떠올랐다. 바다 위의 배가 그려지고, 그 위에 ‘마도로스’로 서면 멋질 것 같았다.
“완도수산고를 선택하자 주변에서 엄청 말렸어요. 친구들이 하나같이 걱정했어요. 서울애가 그런 시골에 가서 뭘 하겠느냐, 어떻게 적응하려고 하느냐.....”
그는 만류를 뿌리치고 꿈을 향해 한발 내디뎠다. 학비는 무료이고, 기숙사를 운영하는 점도 끌렸다.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미용일로 남매를 키운 어머니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갔어요. 고1 때부터 한 시간에 6300원인가를 받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지요. 항해 전공이 적성에 맞아서 공부도 한 눈 안 팔고 빡세게 한 거 같아요.”
서울서 초·중 나와 완도수산고 진학
지난해 마이스터고 기술직공채 합격
수습 거쳐 지난달 청해진호 첫 발령
“좋아하는 일이라 더 열심히 했죠”
그는 완도의 3년을 열심히 보냈다. 졸업해서 무조건 상선을 타겠다는 설계도 해뒀다. 좋아하는 전복·파래 등 해산물도 잔뜩 먹을 수 있었다. 공기 맑은 데서 지내다 서울에 가끔 다녀오면 피곤해선지 얼굴에 여드름이 돋아나기도 했다.
완도수산고 실습선 청해진호의 조타실에서 포부를 밝히는 선원 이찬호씨
“지난해 3월 선생님이 시험 공고를 보여주며 설득했어요. 실습선을 타며 유능한 해기사를 길러내는 일도 괜찮겠다 싶었죠. 석 달 만에 서둘러 필기를 치렀는데 운이 좋았나 봐요.”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넉 달 동안 청해진호 수습선원으로 일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서울의 친구들이 이른 취직에 환호했다. 첫 월급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풀었다. 어머니한테 용돈을 드리고, 여동생한테 화장품을 사줬다.
개학 연기는 그한테 선원의 자세를 가다듬는 소중한 기회를 주었다. “북적일 때는 몰랐는데 뱃전이 조용하니 후배들이 보고 싶어요. 사실 학생 때는 뱃멀미를 많이 했어요. 선원이 되니까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아요. 멀미할 시간도 없긴 해요. 막내라 여기저기서 엄청 부르시니깐요. 선배들한테 열심히 배워서 좋은 선원이 되고, 후배들한테 전통과 경험을 제대로 전해 주고 싶어요.”
수많은 학생을 비극으로 몰아간 세월호 참사의 교훈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중1 때 세월호 참사가 터졌어요. 그땐 배를 탄다는 생각이 없었어도 수습하는 동안 내내 안타까워 콧등이 시큰거렸죠. 막상 학생들을 태우고 원양과 연안을 나가는 실습선을 타게 되니 남의 일 같지 않네요. 다시는 누구도 바다에서 울지 않도록 수칙대로 안전하게 항해하고, 빈틈없이 준비해 배를 지켜야죠.”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전남도교육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