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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죽을 각오 해야’ 윤상원 마지막 말 잊을 수 없어”

등록 2020-05-17 18:35수정 2020-05-18 02:06

【짬】 윤상원기념사업회 이태복 이사장

14일 광주 광산구청 7층 강당에서 열린 ‘윤상원홀’ 명명식에 참석한 이태복 전 장관(왼쪽에서 세번째)과 윤상원 열사의 어머니 김인숙(왼쪽에서 네번째)씨와 동생 윤태원(맨왼쪽)씨, 김삼호 광산구청장(맨오른쪽) 등이 윤 열사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광산구 제공
14일 광주 광산구청 7층 강당에서 열린 ‘윤상원홀’ 명명식에 참석한 이태복 전 장관(왼쪽에서 세번째)과 윤상원 열사의 어머니 김인숙(왼쪽에서 네번째)씨와 동생 윤태원(맨왼쪽)씨, 김삼호 광산구청장(맨오른쪽) 등이 윤 열사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광산구 제공

“몇 번 기록으로 남겨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늦춰온 것은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지극히 괴롭고 살아있는 내가 말할 수 없이 부끄럽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이태복(70)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오월의 광주, 윤상원 동지를 그리며’라는 글을 통해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80)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이 글은 김상집 광주·전남 6월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준비하고 있는 <윤상원 평전> 집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쓰였다.

윤상원은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가 총을 맞고 산화했다. 이 전 장관은 1980년 윤상원과 비합법 노동운동 조직을 함께 했던 동지의 관계였다. 지난 14일 광주 광산구 7층 강당에서 열린 ‘윤상원홀’ 명명식에 참석했던 그는 “다시 한번 정면으로 윤상원을 마주보려고 글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태복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장철규 선임기자
이태복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장철규 선임기자
이 전 장관이 전남대 복학생 윤상원을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말 광주 녹두서점에서였다. 출판사를 차려 노동운동 관련 책을 냈던 그가 <유한계급론>이라는 책을 내고 지역 판매망을 만들려고 광주에 갔을 때였다. 그런데 그는 1978년 서울 경동교회에서 열렸던 행사에서 다시 윤상원을 만났다. “광주의 녹두서점에서 인사드렸던 윤상원”이라고 소개했지만, 말쑥한 신사복 차림의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윤상원은 그에게 “지금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현장 활동을 해볼까 하고요”라고 말했다.

윤상원은 그해 6월 하순 출판사로 찾아왔다. 이 전 장관은 윤상원에게 “고민거리가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인근 주점으로 가 막걸리 한 병을 시켜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윤상원은 “사회과학 공부를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고 깨우쳤으나, 가정형편이 어렵고 장남으로서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은행에 취업해 서울에 왔는데 매우 많은 갈등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이 전 장관은 “그가 매우 솔직했다. 그날 나는 윤상원을 믿음직한 동지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유족 제공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유족 제공
윤상원은 그해 7월10일 은행을 그만두고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불초 소생 부모님의 뜻을 저버리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민족이 처한 현실에 뛰어 들어가 잘못됨을 바로 잡는 데 조그만 저의 힘이나마 보태려 하니…”(아버지에게 당시 쓴 편지) 윤상원은 그해 10월25일 광주 광천공단에 있는 한남플라스틱 노동자가 된 뒤 호남권 최초의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에 적극 참여했다. 이 전 장관은 “그무렵 광주에서 개인적으로 윤상원을 만나 현장활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회고했다.

77년 광주 녹두서점 첫 만남부터
5·18 시민군대변인 시절 통화까지
민주화 동지와의 인연 글로 기록
“살아있는 내가 부끄러워 미뤘지만
다시 윤상원 마주하고 싶어 정리”

81년 망월묘지서 체포돼 7년 옥고

1978년 2월 전남대 졸업식 때 아버지 고 윤석동(뒷줄 가운데)씨 등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윤상원 열사(맨 오른쪽).유족 제공
1978년 2월 전남대 졸업식 때 아버지 고 윤석동(뒷줄 가운데)씨 등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윤상원 열사(맨 오른쪽).유족 제공
이 전 장관은 당시 전국적인 비공개 노동현장조직을 꾸리는 중이었다. 1980년 5월1일 인천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중앙위원회 결성식에 윤상원이 참석했다. 윤상원은 축하 회식 때 “인생에서 최고로 기쁜 날이다. 동지들이 영원히 기억해주길 바란다”며 그의 18번 ‘소리내력’을 뽑아냈다. 전남대 연극반 출신인 윤상원은 1977년 소리꾼 임진택의 창작 판소리 ‘소리내력’을 홀로 익혀 부를 정도로 흥이 있었다. 중앙위원들은 “저 단정한 얼굴에 연극판에 올랐으면 대배우가 됐을 텐데”라며 박수를 쳤다.

1970년대 말 한 회식 자리에서 노래하는 윤상원 열사. 유족 제공
1970년대 말 한 회식 자리에서 노래하는 윤상원 열사. 유족 제공
1980년 5월18~19일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 군인들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윤상원은 5월19일 이 전 장관과 통화하면서 “우리도 참을 수 없어서 공수부대원을 야전삽으로 패버렸다. 현장 분위기가 자위적인 무장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무장투쟁’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윤상원은 벌써 녹두서점에서 김상집(광주·전남6월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과 화염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전 장관은 “5월20일 아침 윤상원은 전에 하지 않던 말을 했다”고 기억한다. “아무래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소. 우리라도 맞서 싸우지 않으면 신군부의 만행을 누가 얘기하겠습니까?” 5월21일 마지막 통화를 할 땐 윤상원은 들불야학팀과 5·18 학살을 알리기 위해 등사기로 <투사회보>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도청 앞에선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54명이 사망했다. 부산에 있던 이 전 장관도 전남 순천으로 가 광주로 가려고 했으나, 교통편이 차단됐다.

‘윤상원 평전’을 준비중인 김상집 6월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의 ‘최후항쟁도'엔 윤상원 열사 등이 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 맞은 상황이 담겨 있다. 김상집씨 제공
‘윤상원 평전’을 준비중인 김상집 6월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의 ‘최후항쟁도'엔 윤상원 열사 등이 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 맞은 상황이 담겨 있다. 김상집씨 제공
광주는 더욱 치열한 무장저항에 나섰고, 윤상원은 ‘죽음’을 선택한다. 계엄군 진입을 앞둔 윤상원은 “너희들은 역사의 증인이 돼야 한다”며 고교생들의 귀가를 설득했다. 그리고 윤상원은 옛 전남도청에 모인 시민군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에 임합시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라고 격려했다.(<윤상원 평전>)

이 전 장관도 1981년 5월18일 광주 망월묘지에서 추모식을 하다가 붙잡혀 모진 고문끝에 반국가단체 수괴로 둔갑돼 7년4개월을 감옥에 갇혔다. 이 전 장관은 “만약 그가 사는 길을 택했다면 광주민주항쟁은 폭도의 난동이 되고, 북한의 개입에 의한 폭동이었다는 조작이 사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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