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전북대 총장선거를 앞두고 경찰청 소속 김아무개 경감이 전북대 교수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본 사건을 기획·주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심인물들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다. 다만 경찰을 이용한 총장선거 개입이 사실로 규명됐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전북대학교 총장선거 개입 혐의를 받는 전북대 정학섭(64·사회학과) 교수 등 2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지난 9일, 관련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단 교수들은 이같은 내용으로 성명을 내어 재판 결과에 아쉬움을 표했다.
전주지법 형사6단독 임현준 판사는 이날 전북대 총장선거에 개입해 당시 총장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교육공무원법 위반,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된 전북대 정학섭 교수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정 교수와 함께 범행을 공모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북대 김아무개(73) 전 교수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정 교수는 자신의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그런데도 정 교수는 억울함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이 불거져 피고인에게 무거운 의혹이 쏟아졌고 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 점,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정 교수와 함께 기소된 김 전 교수에 대해선 “정 교수와 공모해 범행에 이르렀다고 볼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정 교수에게 징역 2년을, 김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정 교수는 전북대 총장선거를 앞둔 2018년 10월16일, 경찰청 수사국 소속의 김아무개 경감을 만나 “이남호 현 총장에게 비리가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전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이후 다른 교수에게 경찰이 이 총장에 대한 탐문을 시작했다는 취지로 말해 이런 내용이 교수회에 전달되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정 교수의 발언은 당시 이 총장을 겨냥한 경찰내사설로 발전해 대학게시판과 교수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했다. 결국 공공연하게 구체적인 사실을 드러내서 이남호 총장을 비방했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29일 치러진 제18대 전북대 총장선거에서는 경찰청 김아무개 경감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선거쟁점으로 떠올랐고 논란을 빚었다. 7명이 출마한 선거에서 결국 김동원 현 총장이 1위, 이남호 전 총장이 2위를 차지했다.
장준갑 전북대 교수 등 40명은 선거 한 달 뒤인 2018년 11월26일, 총장선거와 관련해 “10년 만에 부활한 민주적인 총장직선제가 (외부세력 등) 선거개입 의혹으로 훼손됐다”며 교수회장 등을 교육공무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전주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이 경찰에 넘긴 수사는 “경찰개입으로 인한 제식구 감싸기”라는 우려를 받으며 초기에 속도를 못냈다.
2018년 11월13일 전북대 교수들이 교내에서 총장선거와 관련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임근 기자
검찰은 지난해 4월26일 수사 마무리 브리핑에서 “일정기간 동안(2018년 1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의혹을 받는 관련자 4명이 다양한 이유로 휴대전화를 분실했고, 2명은 기록 복구 자체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선거에 출마했던 공대 출신 유력 후보자도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휴대전화 분실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고, 일부 관련자들은 선거전후 휴대전화 기록이 복원되지 않는 등 디가우징(자기장을 이용한 데이터 삭제)이 의심된다. 우연치고는 석연치 않다. 이번 수사는 아쉬운 점이 있다”고 털어놨다. 결국 증거를 일부 확보한 정 교수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총장후보자를 포함한 교수 3명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했다.
2년 뒤에 치러지는 제19대 총장선거를 위해서는 제도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장준갑 교수 등은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어느 선거보다도 투명하고 모범이 돼야할 국립대학 총장선거에서 외부세력을 교묘하게 활용해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했던 피고인들의 추악한 행태에 대한 선고결과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검경의 수사대상에 오른 인물들의 대부분이 핵심증거(휴대전화 폐기 등)를 인멸함으로써 결국 하수인들에 불과한 피고인만 처벌받은 것은 정의로운 사법적 처분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정채 전북대 교수는 “10년 만에 직선제를 다시 쟁취해 치른 첫 선거에서 외부 개입 등 혼탁선거가 자행됐다. 그런데도 한 개인의 일탈행위로만 끝난 셈인데, 이같은 행위를 그냥 지나치면 불법을 묵인·방치하는 셈이다. 이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선거를 총괄하는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가 교수 등 내부 구성원으로만 꾸려져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 등 외부자가 다수로 참여한 위원회를 꾸려서 선거를 제대로 감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지역구선관위에서 총장선거를 위탁관리를 받고 있으나 미온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등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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