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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전국 농민들 ‘수세 싸움’ 기억하시나요?

등록 2020-11-25 22:55수정 2020-11-26 02:37

이웅배 전 해남부당수세거부추진위 총무
“농업·농촌문제 농민 스스로 풀라는 교훈”
전남 해남수세거부추진위원회 총무로 활동했던 농민 이웅배씨.
전남 해남수세거부추진위원회 총무로 활동했던 농민 이웅배씨.

“그렇게 많이들 나올지 몰랐어요. 읍내 복판에 징소리가 울리고 대단했지.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거였지요.”

전남 해남 농민 이웅배(60)씨는 25일 군민 3천여명이 읍내로 몰려나왔던 33년 전의 감동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1987년 6·10항쟁 직후 노동자·농민 대투쟁 때 해남부당수세거부 추진위원회(이하 해남수추위) 총무를 지냈다. 27살이던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에서 3년째 농사를 짓는 중이었다.

“벼농사는 물이 없으면 못 짓잖아요. 일제는 수리조합을 설치해 가혹한 수세를 거둬갔고, 해방 이후 농지조합까지 이런 수탈이 이어졌어요. 80년대 들어 1단보(300평) 벼 40~60㎏까지 올라간 수세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지요.”

그는 1987년 해남와이(YMCA)농어민회에서 수세싸움을 하기로 결정하자 자료를 모으고 조직을 다졌다. 그는 이듬해 예비군 훈련에 가서 수세의 부당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뿌렸다가 군당국에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회원 30여명과 수세싸움을 준비했다.

“87년 11월26일 해남 장날을 맞아 부당수세거부 군민결의대회를 열었어요. 물꼬만 틀어놓고 수세를 받아가는 농조(농지조합)에 맞서 싸우자는 유인물 2천장을 찍었는데 3천명이 몰려나왔어요. 동학 이래 최대의 농민 인파라고 다들 깜짝 놀랐지요.”

그는 “예부터 치수는 국가 책임이다. 한 가구 부채가 400만원인데 한해 8만원 넘게 수세를 짜내가니 견디기 어렵죠. 평소에는 위세에 눌려 말도 못하다가 가려운 데를 긁어주니까 농민 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라고 말했다.

해남수추위는 이날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3년 동안 수세싸움을 끈질기게 벌였다. 10여차례의 군민 1천여명 이상이 참여하는 집회를 열어 수세납부 거부, 고지서 소각, 차압딱지 반납, 수세폐지 서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을 이어갔다.

“수세싸움이 전국으로 번지자 노태우 정부는 긴장했어요. 수세를 87년 23㎏에서 88년 10㎏, 89년 5㎏으로 낮추겠다고 물러섰지요. 현산면 오분임(당시 51)씨가 미납 수세를 받으러 왔던 농조직원을 향해 ‘수세는 죽어도 못내니 지금까지 냈던 수세를 돌려 달라’며 쫓아냈던 장면은 지금도 또렷해요.”

해남의 싸움은 이듬해 강진, 함평, 장흥, 나주 등으로 번지며 전국 동시다발 수세투쟁의 불을 댕겼다. 농민들은 1989년 2월13일 서울 여의도에서 2만여명이 참여하는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해남에서도 버스 16대에 타고 700여명이 올라갔어요. 오가는 데 7시간씩 걸리는 버스 안에서 일제 강점기 때 수세를 여태 거둔다며 성토가 대단했지요. 이 싸움으로 윤치영(작고) 해남수추위장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수세를 경감하고, 2년분은 결손처리해주는 등 승리했어요.”

수세싸움에서 이긴 농민들은 1990년 전국 처음으로 해남군농민회를 결성해 생존권 투쟁에 앞장섰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수세를 완전히 폐지하고, ‘농조’를 농어촌공사에 통폐합했다.

“그때 싸우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수세를 내고 있지 않을까요. 늙을 때까지 농사 지으면 골병, 빚, 천대를 면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거 같아요. 농업·농촌문제는 농민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교훈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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