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마지막 비전향장기수 오기태 선생이 지난 7일 새벽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향년 90.
2000년 1차 송환 명단(63명)에 포함되지 못해 2차 송환을 바랐던 고인은 끝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못 본 채 생을 마쳤다. 그가 숨짐으로써 전국에는 12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남았다.
1930년 전남 신안군에서 3남2녀 중 둘째로 출생한 고인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빨치산 활동을 하던 형의 권유로 의용군에 입대했다. 1957년 중사로 군을 제대한 고인은 함경북도 온성군 탄광에서 일하며 결혼도 해 4남매를 뒀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969년에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던 중 대남공작원으로 남파돼 남쪽 노동자 동향을 파악하다 그해 체포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그는 1989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그는 전주 ‘일꾼 쉼터’에서 생활하며 1차 송환 명단에 포함되기를 고대했으나 좌절됐다. 교도소에서 전향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그는 “강압에 의한 전향은 무효”라며 전향 철회를 선언했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며 2차 송환을 기다리던 중 2005년에 급성폐렴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고, 2008년에는 대장암 수술까지 받았다.
그는 모진 세월을 살아내면서 북의 가족과 함께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전북에 연고가 없는 고인을 위해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방용승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올 하반기부터 부쩍 수척해진 오 선생은 가족을 생각하면서 잠들 듯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장례위원회는 “우리는 당신의 삶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당신이 기다려온 그 날을 향해 더 굳건히 나아가려 한다. 님이여, 바람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소서. 이승에서의 고통과 모진 세월을 다 잊으시고 편히 쉬소서.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에 춤추고 노래하며 이땅에 다시 오소서”라고 추도했다.
빈소는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이다. 추도식은 8일 오후 6시30분이고, 발인은 9일 오전 9시다. 장지는 전주 효자공원묘지다. 호상 김진왕 010-9364-5098.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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