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목포일본영사관 안내판 옆에 설치할 예정인 단죄비(맨 왼쪽). 목포문화연대 제공
옛 목포일본영사관 안내판보다 더 안쪽에 설치된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 포토존. 목포문화연대 제공
목포시민단체가 옛 일본영사관 앞에 ‘단죄비’를 세우려다 문화재청의 제지를 받자 반발하고 있다.
목포문화연대는 20일 성명을 내어 “일제 강점기 수탈의 대표적 상징물 앞에 단죄비를 세워 시민한테 역사의식을 심고 미래 세대의 교육장소로 활용하려는 계획이 행정당국의 불허처분으로 위기를 맞았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허가하지 않은 사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즉각 철회하지 않으면 항의 민원을 제기하고 시민 서명을 받는 등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오는 3월1일 삼일절에 옛 목포 일본영사관(사적지 289호)과 옛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전남도기념물 174호) 앞에 가로 80㎝ 세로 63㎝ 너비 23㎝의 단죄비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설치할 문안도 영사관엔 “국권을 강탈하고 조선인들의 인권을 유린한 일제 식민 통치의 선봉 잔재물”, 동척지점엔 “경제 독점과 토지, 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일본이 세운 식민지 수탈 선봉 잔재물”로 정해 두었다. 이 단체는 지난해 10월 문화재청과 전남도에 현상변경 허가를 각각 신청했다.
하지만 문화재 관리당국은 “문화재의 훼손이 우려된다”며 막아섰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말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 분과위에서 심의한 결과 부결됐다고 알려왔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단죄비는 친일 인물의 반민족적 행위를 심판하자는 취지로 추진돼 건물에는 의미와 내용이 맞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전남도도 지난달 초 도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문화재에 직접 설치하기보다는 기존 안내판에 문구를 넣는 안이 타당하다”며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통지를 받은 이 단체는 “의아하고 개탄스러운 심의 결과”라고 항변했다. 이 단체는 “단죄비가 인물만 가능하고 건물은 안된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건물에 부착하지 않는데 훼손이 우려된다고 트집을 잡는다. 훼손을 우려한다면 단죄비 설치 예정지보다 더 가까이 5배나 크게 세운 드라마 포토존은 뭐냐”고 따졌다.
정태관 목포문화연대 대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옛 총독부였던 중앙청을 헐었던 나라에서 옛 영사관 앞에 단죄비 하나 못 세우게 한다니 말이 안 된다. 시민이 뜻을 모아 추진한 만큼 허가할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