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숙 작가가 지난 5일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부모님이 운영했던 옛 닭전문점 ‘청솔가든’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서양화가 류미숙(57) 작가는 지난해 4월 무안의 전남도청 갤러리에서 ‘엄마의 밥상’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며 그릇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원형 접시나 철제 공기를 캔버스에 붙이고 산, 바다, 꽃, 사람 등 다양한 소재들을 그렸다. 현대미술 다양한 소재를 작품에 활용하고 있지만 류 작가의 작품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작품 속 그릇들은 5년 전 세상을 떠난 류 작가의 어머니 박남옥씨가 50여년 간 애용했던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류 작가는 엄마의 그릇에 담긴 사연을 들려줬다. “2016년 4월 뇌출혈로 갑자기 엄마를 떠나보냈어요. 76살이셨죠. 엄마가 운영하던 식당을 폐업하고 물품들을 정리하는데 그릇이 끝도 없이 나오는 거예요. 평생 자식과 손님들을 위해 그 그릇을 쓰셨다고 생각하니 한참 눈물이 나왔어요.”
류미숙 작가가 작품에 활용하기 위해 밑 작업을 해놓은 그릇들. 어머니가 운영했던 식당 ‘청솔가든’에서 50여년간 쓰던 것들이다. 김용희 기자
류 작가의 부모님은 1970년대부터 광주 남구 원산동에서 닭요리 전문점 ‘청솔가든’을 운영하며 3남매를 키웠다. 청솔가든은 큰 규모(660㎡)와 푸짐한 음식 덕에 결혼식 피로연, 대학 신입생 환영회 등이 자주 열리던 곳이어서 수십 년 단골도 많았다.
활달한 성격이던 어머니 박씨는 평소 텔레비전을 보며 등산, 낚시, 스킨스쿠버,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헛걸음할까봐 주말에도 쉬지 않고 식당 문을 열었다. 20여년 전 류 작가가 며칠 동안 떼를 써서 떠난 제주도 나들이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일 정도였다. 아버지가 2013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머니는 식당을 닫지 않고 혼자서 손님을 맞았다.
류미숙 작가가 등산을 해보고 싶다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릇 등에 그린 작품 ‘엄마의 꿈’. 류미숙씨 제공
류 작가는 “한 땐 몰려드는 손님이 미울 정도로 혼자서 고생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엄마의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차마 식당 물품을 버리지 못했던 류 작가는 2016년부터 청솔가든을 작업실 삼아 어머니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릇은 산악인들이 매달린 암벽이 됐고 물컵은 병아리를 품은 닭으로 재탄생했다. 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쓰던 낡은 돈가방과 가족 그림을 작품에 함께 담아 부모님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온종일 서서 작업을 하고 물감이 잘 배도록 사포질을 한 탓에 팔, 다리 관절에 이상이 생길 정도였지만 그는 작품으로나마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었다.
류미숙 작가가 작업한 ‘엄마의 사랑’ 작품. 어머니가 수십년간 썼던 돈가방과 그릇을 활용해 어머니의 삶을 표현했다. 류미숙씨 제공
그는 올 5월 서울 인사아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나눌 계획이다. “그동안 풍경화, 인물화를 그리며 단체전에만 참여했는데 엄마의 꿈을 작품에 담은 뒤로 개인전과 함께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어요. 엄마 덕에 저만의 작업세계를 찾은 거죠.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작품을 할 생각이에요.”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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