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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영감” 101살 산골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요

등록 2021-04-07 17:15수정 2021-04-08 02:04

완주 동상면 주민 100여명 채록 시집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 펴내
박병윤 면장 주도…14일 출판기념회도
전북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이 지난 5일 시집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완주군 제공
전북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이 지난 5일 시집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완주군 제공

“영감 산자락에 묻은 지 수년 지나/ 백 살에 초승달 허리 이마 주름 뒤덮는데/ 왜 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제발 후딱 데려가소, 영감.”

- 101살 백성례 할머니의 시 ‘영감 땡감’의 한 부분

전북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이 고된 삶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구술해, 시로 담은 시집이 나왔다. 구술채록 시집 <동상이몽: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가 그 것이다. 이 시집은 6살짜리 박채언 어린이부터 100살이 넘는 노인까지 동상면 주민 100명이 참여해 지은 시 150여편을 수록하고 있다. 270쪽 분량 대부분 70대 이상 노인들의 사연을 생생하게 담았다.

시집이 나오는 데는 2019년 시인으로 등단한 박병윤(52) 동상면장의 노력이 컸다. 지난해 면장을 맡은 그는 “동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소용없으니까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채록해 놓으라’는 제안을 주변에서 들었다. 그는 출판사 등에 맡기려고 했으나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고, 코로나19 탓에 주민들이 외지인과 대면을 꺼려서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

시집 제작을 주도한 박병윤(왼쪽) 동상면장과 원고 감수를 해준 윤흥길(오른쪽) 작가. 완주군 제공
시집 제작을 주도한 박병윤(왼쪽) 동상면장과 원고 감수를 해준 윤흥길(오른쪽) 작가. 완주군 제공

박 면장은 지난해 8월부터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구술을 받았다. 말씀을 듣고 적고 녹음하며 혼신을 다했다. 과로로 두 차례나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6개월 동안 발품을 팔아 기록한 내용을 시로 정리해 초고를 만들었다. 원고에 대한 감수는 전북시인협회와 전북작가회의 회원 등에게 부탁했다.

박 면장은 “전국 처음으로 주민들이 구술한 내용을 채록한 시집이 될 것이다. 한국전쟁 때 빨치산에게 당한 고초 등 가슴 속 맺힌 어르신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직접 담고 싶었다. 주민들이 시집을 내면서 고생을 많이 했기에 출판기념회 때 모두 울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14일 오후 2시 동상면 학동마을의 여산재에서 열린다.

감수와 교정 등에 참여한 소설가 윤흥길씨는 서평에서 “산골 작은 고장 동상면에서 왜배기(겉보기에 좋고 질도 제법 괜찮음) 물건이 돌출했다. 친숙한 농경언어와 토착정서의 때때옷을 입혀놓은 시편 하나하나가 사뭇 감동적인 독후감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시집 제목의 ‘동상이몽’(東上二夢)도 ‘겉으로는 같지만 속으로는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동상면의 두 가지 꿈’을 말한다. 하나의 꿈은 오래전에 동상·대아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이 지역의 역사를 찾는 꿈이고, 두번째 꿈은 전북 동부산악권에 위치해 ‘국내 8대 오지’라고 불리는 동상면 ‘깡촌’에서 주민들이 예술가로 변해가는 꿈이다.

완주군 동상면 주민 이계옥씨가 시를 써보고 있다. 완주군 제공
완주군 동상면 주민 이계옥씨가 시를 써보고 있다. 완주군 제공

비매품인 이 시집은 문화도시를 꿈꾸는 완주군의 문화예술 활성화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어르신 세대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시를 읽는 내내 울컥했다”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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