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장애인을 돌본 수녀들이 은퇴 후 지낼 광주 광산구 삼거동에 신축되는 수녀원 조감도.예수의소화수녀회 제공
‘한평생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했지만 은퇴 후 머무를 곳이 없는 광주 여성장애인복지시설 ‘소화자매원’ 수녀들에게 보금자리가 생길 전망이다. 광주시민사회도 수녀들의 봉사정신에 보답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예수의소화수녀회는 “다음 달 4일 광주 광산구 삼거동에서 김희중 대주교(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주례로 소화수녀원(가칭) 신축을 위한 기공식을 연다”고 31일 밝혔다.
새롭게 지어지는 수녀원은 노령 때문에 장애인을 더는 돌보지 못해 소화자매원을 떠나야 할 예수의소화수녀회 소속 수녀들을 위한 공간이다. 소화자매원에 있는 수녀 18명 중 절반이 70살 이상으로 알려졌다.
소화자매원 수녀들은 고 김준호(1924∼2010) 선생과 함께 1956년 3월 광주 무등산 자락에서 세운 결핵환자 재활시설 ‘무등원’을 세웠다. 무등원은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인 남구 봉선동으로 이전했고 1966년 ‘무등자활원’으로 이름을 바꿔 장애인도 함께 돌봤다. 무등자활원은 돼지 등을 키워 시설을 유지했지만 1977년 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존폐 위기에 처했다. 이때 고 조비오(1938∼2016) 신부가 사비를 털어 도우며 인연을 맺었다. 1981년 무등자활원은 ‘소화자매원’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여성장애인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모든 사회복지시설은 법인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소화자매원은 땅 대부분을 법인에 기부채납하며 1985년 사회복지설립인가를 받았다. 수녀들이 거주할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에스디엔㈜ 엔진사업부 임직원들이 26일 광주 소화자매원에서 예수의소화수녀회 수녀원 신축을 위한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소화자매원 제공
수녀들은 조 신부의 지도로 1999년 1월 광주대교구로부터 예수의소화수녀회 설립을 인가받았다. 수녀원은 마련하지 않고 소화자매원에 있는 거주공간에서 임대료를 내고 지내왔다. 수녀들은 은퇴를 하면 갈 곳이 없는 처지였지만 법인으로부터 받은 임금을 다시 공동 운영비로 내놓으며 따로 거처를 마련할 엄두를 못 냈다.
고 조비오 신부는 수녀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광산구 삼거동에 사제관과 함께 수녀원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조 신부가 2016년 세상을 떠나며 수녀원 건립은 기약 없이 미뤄진 상황이었다.
소화자매원 이사장을 이어받은 조카 조영대 신부는 수녀원 신축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광주대교구의 허락을 받아 건립기금 모금을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저조한 상황이었다. 이런 소식은 지역사회에 알려졌고 올해 초부터 5·18단체, 시민단체, 기업 등의 후원이 잇따르며 이번 기공식을 열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축 수녀원은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건축면적 397㎡)로 2022년 2월까지 지어질 예정이다.
조영대 신부는 “‘그동안 수녀님들이 장애인들을 보살폈다면 이제는 우리가 수녀님들을 보살필 차례’라면서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다. 아직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수녀님들이 편하게 수도에 정진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추진돼 다행이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