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건물붕괴사고가 발생해 119구조대가 피해자를 수색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지역 붕괴사고 원인 가운데 하나로 철거업계에 만연한 불법하도급 관행이 지목되고 있다.
광주경찰청은 11일 수사상황 중간보고에서 “사고 당시 공사를 한 작업자 4명은 광주에 있는 철거업체 ㈜백솔건설 소속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서울에 본사를 둔 ㈜한솔기업과 철거작업 하도급 계약을 맺었는데, 실제 철거는 현지 철거업체 소속 인력이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김교태 광주경찰청장은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철거공사를 수주한 업체는 한솔인데, 왜 백솔 작업자들이 공사했는지 수사하고 있다. 한솔과 백솔의 불법 하도급 여부는 수사를 통해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에서는 종합공사업체가 전문공사업체에 하도급할 수 있지만, 전문공사업체가 전문공사업체에 하도급하는 경우는 금지하고 있다. 다만 발주자의 서면 승낙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종합건설업체인 현대산업개발이 전문공사업체인 한솔기업에게 하도급을 줄 수 있지만, 한솔은 다른 전문공사업체에 재하도급을 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공사 발주자인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조병찬 총무이사도 “한솔로부터 하도급 승낙 요청을 받은 적 없다. 우리는 시공사(현대산업개발)만 상대했다”고 말했다.
앞서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는 10일 새벽 사고현장에서 “한솔기업이 철거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불법 하도급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광주 철거업계와 노동계는 서류로는 확인할 수 없을 뿐 현장에서는 불법 재하도급이 만연해 있고 주장했다. 광주 북구 문흥등 백솔건설 사무실 주변 업체 사이에서도 ‘백솔이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공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고 한다.
광주 철거업계 한 관계자는 “한솔은 서울에 본사가 있는데 인력과 장비를 광주로 가지고 오는 것보다 광주업체에게 재하도급을 주는 것이 더 이익이다. 규모가 큰 철거공사는 도급액의 60∼70% 수준으로 지역 업체와 계약을 맺는 게 업계 관행이다. 재하도급을 받은 업체로서는 공정을 빨리해야 이익이 생기니까 서두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도 10일 성명을 통해 “재하도급은 법망을 피해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로 진행하기 때문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공사비는 더 싸게 내려가고, 수주업체는 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30년 경력 건설노동자 김아무개씨는 “철거 현장에선 모든 과정을 싸게싸게 해결하려 한다. 심지어 감리마저 월급 300만원 이하로 법적 요건만 갖춰놓고 있으니 건물 해체 등 위험 작업 때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참여자치21은 “무리한 철거, 승강장 방치, 감리자 부재 등의 근본에는 이윤만 좇는 하도급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애초 철거비가 3.3㎡당 28만원에서 14만원으로 줄었다는 의혹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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