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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제주도에도 ‘위안소’ 있었다”

등록 2019-07-08 17:16수정 2019-07-08 20:55

제주대 평화연구소 기자회견서 목격자 증언
오시종씨 “집 근처 해안 부근에 위안소 2곳 운영”
“한 곳에 5~6명 있었고, 해군 특공부대원들 이용”
일제 강점기 말 제주 성산리에서 위안소를 목격했다는 오시종(왼쪽)씨와 조성윤 제주대 교수가 8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일제 강점기 말 제주 성산리에서 위안소를 목격했다는 오시종(왼쪽)씨와 조성윤 제주대 교수가 8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5년 4월께부터 일본군의 패전 때까지 제주도에 일본군 위안소가 운영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제주대 평화연구소(소장 조성윤)는 8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사무소에서 ‘일제 강점기 성산리 일본군 위안소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증언자가 한 명 뿐인데다 이를 뒷받침해 줄 증거 사료 등이 아직 없어 추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이날 증언자로 나온 오시종(91)씨는 당시 자신의 마을에 ‘일본군 위안소’가 2곳 있었다고 말했다. 한 곳은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30여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민가였고, 다른 곳은 자신의 집에서 1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일본인의 여관이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16살이었던 오씨는 이날 “일본 해군 특공부대가 들어온 뒤에 군에서 한 집을 징발해 위안소로 만들었다. 한 곳에 5~6명이 여성들이 있었다. 어디서 온 분들이지는 모르지만 20살 미만도 있었고 25~26살 된 사람도 있었으며,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위안소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오씨는 그 시설이 ‘위안소’라는 판단 근거에 대해 “바로 뒷집에 사니까 알게 됐다. 일본 군인들이 운영했다는 것을 알았다. 군인들이 위안소 앞에서 줄을 서있는 모습도 보였다. 여성들은 물을 길으러 다니거나 나다니지 않고, 노병(일본군 108혼성여단)들이 (필요한 물품을) 운반했다”고 말했다. 이들 위안소에는 일반 일본군이 아닌 요카렌(‘인간병기’로 불리는 일본 해군 특공부대) 대원들만 다녔다고 오씨는 기억했다. 오씨는 또 “위안소의 여성들이나 일본 군인들과 대화할 기회는 없었지만, 매일 정복 입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위안소 목격자 오시종씨가 밝힌 성산리 위안소 터. 허호준 기자
위안소 목격자 오시종씨가 밝힌 성산리 위안소 터. 허호준 기자
이와 관련해 최근 ‘태평양전쟁 말기 요카렌의 제주도 주둔과 위안소’라는 논문을 발표한 제주대 조성윤·고성만 교수는 논문에서 오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오씨가 위안소의 외관과 그곳의 여성들, 휴일이면 위안소 앞에 늘어섰던 ‘나나츠 보탄’(요카렌의 별명)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오씨가 요카렌 외에는 거기 줄 서는 것을 못 봤고, 주로 쉬는 날 오후가 요카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봤다. 위안소 부근에는 동초가 서 있어서 오씨는 멀리서 봤고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그 앞에서 군인들이 정렬해 서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논문에는 또 오씨가 1970년대에 당시 위안소에서 봤던 여성을 한 차례 만났던 이야기도 실려있다. 오씨는 논문에서 “맨 처음에는 (그 여성이) 나를 피하다가 차차 얘기를 하게 됐는데, 한 사람만 상대했던 것이 아니고, 하루에 2~3명 될 때도 있었고, 5~6명 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오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 일에 대해 기억을 살려내지 못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위안소의 존재를 직접 목격했다는 오씨의 증언을 토대로 이뤄졌으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다른 주민의 증언이나 증거 사료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연구자들이 만난 1920~1930년대생 5명 가운데 오씨를 제외한 4명은 위안소의 존재를 몰랐다. 조 교수는 “북한과 대구, 부산 등에도 위안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현재 증언자가 있고 장소를 특정한 경우는 제주가 처음이기 때문에 조금 부족하더라도 공개하게 됐다. 국내에 설치된 위안소 연구를 촉진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1945년 5월 제주 고산리의 소학교 앞에서 촬영한 제120신요대 소속 요카렌의 단체 사진. <사진집 인간병기 신요특별공격부대 하권>
1945년 5월 제주 고산리의 소학교 앞에서 촬영한 제120신요대 소속 요카렌의 단체 사진. <사진집 인간병기 신요특별공격부대 하권>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제주도 주둔 일본 해군의 해안특공기지는 성산 일출봉 해안과 서귀포 삼매봉 해안, 고산 수월봉 해안 등 3곳이었다. 성산 일출봉 해안에 배치된 제45신요대는 ‘무라야마부대’라는 별칭으로 알려졌고, 신요정(震洋艇) 1형 50척이 있었으며, 이를 위해 일출봉 해안에 18개의 갱도를 만들었다. 이 부대는 1945년 4월 성산포에 들어왔다. 신요정은 베니어 보트로 폭탄을 장착하고 일본 해군특공부대(요카렌) 병사가 탑승한 채로 미군의 군함을 향해 돌진해 충돌·폭파하는 함정이다. 요카렌은 바다의 ‘가미카제’와 같은 부대였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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