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 박아무개(50)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이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는 11일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압수수색영장 없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 인정할만한 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2009년 2월 박씨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 박씨가 횡령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을 알면서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주거지인 모텔을 수색하고, 모텔업주로부터 박씨의 청바지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한 것은 위법하기 때문에 청바지에 대한 증거 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 청바지에서 검출한 미세섬유 증거 및 분석 결과는 위법 수집 증거인 청바지를 기초로 한 2차 증거로 증거 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미세섬유 증거와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및 분석 결과에 대해서도 증거 능력이 없다고 결론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검찰은 “미세섬유와 법의학, CCTV 영상 등에서 도출한 증거를 토대로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다. 범행동기와 수법 등을 보면 피고인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 ㅇ(당시 26)씨가 귀가하다 실종된 뒤 일주일만인 같은 달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본부를 설치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잡지 못해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렸다.
택시기사였던 박씨는 당시에도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직접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이 사건은 일명 ‘태완이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지면서 지난해 초 수사가 재개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의 재감정을 통해 피해자의 가방과 치마에 묻은 박씨의 바지 섬유증거를 추가 확보하고, 박씨의 차량 트렁크 등 3곳에서 피해자의 옷에서 나온 섬유질과 유사한 섬유증거를 추가 확보해 같은 해 12월 21일 박씨를 구속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의 박씨에 대한 무죄 선고에 따라 이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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