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행불인 유족들이 8일 오전 행불인 재심 청구소송 심리가 시작된 제주지방법원 법정으로 몰려들고 있다. 허호준 기자
“아기 구덕(요람)에 있을 때 아버지가 잡혀갔다. 아버지가 빨갱이로 내몰려 잡혀갔다고 해서 돌아가신 줄로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8일 오전 제주시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임춘화(75)씨가 4·3 당시 아버지(1922~?)가 행방불명된 경위를 기자들에게 털어놓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임씨의 나이 세 살 때 아버지가 잡혀갔다는 얘기를 가족들로부터 들었고, 더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 뒤 임씨의 삶은 신산했다. 임씨는 “법원이 유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수형 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재심 청구소송 심리가 시작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이날 오전 201호 법정에서 70여년 전 내란 실행 또는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수형 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김병천씨 등 행방불명인(행불인) 14명에 대한 첫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행불인들의 특성상 이날 심문에는 아들과 딸, 동생 등 직계 유족이 재심 청구인으로 참석했다.
법정에는 김씨의 아들 김광우(75) 제주4·3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장 등 ‘피고인’을 대신해 재심 청구인 13명이 참석했다. 청구인 가운데 한 명은 건강 문제로 불참했다. 김 회장은 “농사를 짓던 27살의 아버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군인에게 끌려가 주정공장에 수감됐다.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아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는데 출소 8개월을 앞두고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제주4·3 행불인 재심 청구소송을 낸 유족 임춘화씨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불법 군사재판으로 수형 생활을 했던 수형 생존자들이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1월 열린 재판에서 사실상 무죄 취지의 ‘공소 기각’ 결정을 끌어낸 적은 있지만 행불인에 대한 재심 청구소송 개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행불인들은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간첩죄·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죄)과 내란 실행 혐의로 징역 1년~사형을 선고받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행방불명됐다.
재심 청구소송의 쟁점은 행불인들의 사망 여부다. 재판부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행불인을 ‘피고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며 조심스럽게 언급한 뒤 “피고인들이 생존하더라도 대부분 나이가 90대 후반부터 100세가 넘어 생존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도 절차상 생존 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를 입증할 의견서를 변호인 쪽에 요청했다.
당시 수형인들의 이름과 주소 등이 적힌 ‘수형인명부’와 호적상 이름이 다를 경우와 공소사실을 반박할 구술 증거에 대한 증명력도 쟁점이다. 변호인 쪽은 행불인들이 동일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과거 호적상 주소와 수형인명부상 주소를 비교하는 등 관련 문서를 재판부에 별도 제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판부는 “제주4·3사건은 매우 불행한 사건이다. 재판부도 많이 고민하겠다. (검찰과 변호인도) 도와달라”고 말했다.
제주4·3으로 인한 행불인 수형자 재심 청구인은 이날 심리를 시작한 14명을 포함해 지난해 6월과 지난 2월 등 두 차례에 걸쳐 모두 349명에 이른다. 재판부와 변호인은 재심 청구인의 수가 많아 당시 직접 경험을 하거나 사실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사례에 대해 심문을 선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법정에는 행불인 유족 100여명이 직접 나와 방청석이 가득 차 이번 재심 청구소송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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