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 장군 동상에 세워진 항일거리 현판 앞에서 변정희 부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항일거리 철거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부산 동구가 일본총영사관 근처에 세워진 ‘항일거리’ 현판의 강제철거를 다음달로 미루기로 했다.
동구는 “‘아베 규탄 부산시민행동’(시민행동)이 세운 현판에 대한 행정대집행 기한을 13일에서 한 달 뒤인 다음달 13일로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동구는 시민행동에 현판 행정대집행 계고장은 세 차례 보냈다.
동구는 “물리력을 앞세운 행정대집행을 강행하다가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양쪽의 상처만 남는다. 강제철거보다는 시민행동과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동구와 시민행동은 27일 협의를 진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시민행동 관계자는 “대화 필요성은 양쪽 모두 공감하고 있다. 내부 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사항을 정한 뒤 동구와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행동은 지난 8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있는 정발 장군 동상에서부터 직선으로 100m가량 떨어진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까지의 길을 항일거리로 선언했다. 일본 정부에 전쟁범죄 사과를 촉구하는 뜻이며, 시민이 직접 이 거리를 항일 문화거리로 꾸며나가겠다는 뜻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대법원 배상 판결 1주년인 지난 10월30일 정발 장군 동상 앞에 항일거리 현판을 세웠다. 소녀상과 노동자상의 건립 의미와 항일거리 조성 이유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동구는 항일거리 현판을 불법 조형물로 보고 있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조형물 등은 도로를 점용할 수 있지만, 항일거리 현판은 역사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공공시설인 도로의 이름을 임의로 붙일 경우 혼선이 생길 수 있어 항일거리 현판을 철거해야 한다는 태도다. 동구 관계자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현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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