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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살림꾼’ 윤현진 선생 유품 고향 양산시립박물관에

등록 2021-01-11 18:33수정 2021-01-12 02:41

증손자, ‘반닫이에 보관’ 21점 기증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 망명
1921년 임정 초대 재무차장 지내
고 윤현진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고 윤현진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살림꾼’이었던 윤현진(1892~1921년) 선생의 유품이 그의 고향인 경남 양산 양산시립박물관에 기증됐다. 박물관은 윤 선생 서거 100주년인 오는 9월 17일부터 석 달 동안 특별전시회를 열어 윤 선생 유품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양산시립박물관은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역임한 우산 윤현진 선생의 증손자 윤장원씨로부터 윤 선생 유품 14건 21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박물관은 2016년 윤장원씨의 아버지인 고 윤석우씨로부터 윤 선생의 유품 53건 93점을 기증받았다.

기증한 유물은 옛 가구인 반닫이와 자수베개, 훈장, 그림 등이다. 윤 선생의 부인 엄정자 선생은 결혼할 때 반닫이를 혼수품으로 가지고 왔는데, 기증 물품은 대부분 반닫이에 넣어서 보관하던 물품들이다.

윤현진 선생은 경남 양산시 상북면 출신으로 1914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 메이지대학에 다니며 조선유학생학우회·신아동맹당 등에 가입해 활동했다. 1916년 귀국해서 3년 동안 대동청년단·백산무역주식회사·의춘상행·기미육영회 등과 관계를 맺고 비밀결사운동을 벌였다. 3·1 운동 직후인 1919년 3월21일 윤 선생은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위원, 독립신문 발기인 등을 맡았다. 1921년 2월엔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에 취임해 임시정부의 살림을 책임졌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29살의 나이로 과로사했다. 장례는 임시정부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유해는 상하이 외국인묘지에 묻혀있다가, 해방 이후 한국으로 봉환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윤 선생에게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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